‘맛이 최고’란 시절이 있었다. 바로 몇년 전, 아니 현재도 통용되는 개념이기도 한데 마치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 올드 (old) 버전 같다. 맛있는 음식점을 규정할 때 필요충분조건을 이야기한 거다.
사실 맛있는 음식은 참 많다. 맹물에 시판 조미료 몇 숟가락 넣으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나고, 여기에 청량고추까지 더하면 콧등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점을 선정할 때 우선순위에서 맛이 밀려난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전문가들 사이엔 ‘음식 맛은 기본’이란 말까지 나돈다. 대신 음식점을 고르는 기준으로 사람을 앞세운다. 이들이 말하는 사람은 셰프(chef)다. 주방장을 얘기하는데 단순히 주방의 요리를 책임지는 관리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그제큐티브 셰프로 메뉴의 개발에서부터 음식점의 콘셉트까지 결정할 정도의 막강파워 요리 실력자를 말한다. 그래서 요즘 자주 듣게 되는 게 ‘스타 셰프’란 단어다. 스타 셰프는 연예인 못지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손님이 몰려 예약이 꽉 찼을 땐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건 기본, 그가 음식점을 옮기면 팬들도 덩달아 움직인다. 앞서 일하던 음식점이 문을 닫을 지경으로 팬들의 이동이 심하다.
현재 국내에서 주목받는 스타 셰프는 10여명. 대부분 외국에서 요리유학을 하고 들어온 젊은 셰프다. 프랑스의 르꼬르동블루, 미국의 CIA, 이탈리아의 ICIF, 일본의 츠지나 핫도리 조리학교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요리학교 출신이다. 여기에 칠성급 호텔의 레스토랑이나 스페인의 ‘엘브리’ 등 미식가들이 최고로 꼽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몸소 일을 배우며 실력을 쌓은 인물들이다. 그런데 스타 셰프란 단어 앞에 ‘토종’이란 접두어를 붙이고 다니는 인물이 있다. 특급호텔 출신도 아니고, 화려한 외국 요리학교의 학벌이나 경력도 없다.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어찌어찌하다가 주방에 들어가게 됐다는 게 요리를 시작하기 전 그의 이력 전부다. 레스토랑 주방에 들어가 양파를 까고 설거지를 한 지 20여년만에 대한민국 스타셰프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 됐다. ‘엘본더테이블( ELBON the table·신사점 02-547-4100)’의 최현석 셰프다.
180cm를 넘는 키와 훤칠한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카리스마,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속 깊은 섬세함과 자상함이 느껴진다. 그가 내는 음식 역시 그렇다. 겉모양은 이탈리아 요리를 바탕으로 한 서양식에 가깝지만 속맛은 ‘손맛 나는 토종 한식’임을 알 수 있다. 음식 값의 높고 낮음을 떠나, 주머니가 넉넉한 월급날이라도 맛보지 않으면 억울한 맛이다. 다달이 바뀌는 세트 메뉴를 챙기면 그의 음식 세계를 보다 깊게 느낄 수 있다. 런치세트는 4만5000원부터, 디너세트는 7만5000원부터. 일산과 이태원에 분점도 있는데 최셰프를 만나려면 가로수길에 있는 신사점이 유리하다.

/유지상 전 중앙일보 맛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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