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주석서 ‘온주’ 출시, 법조문화에 새바람 일으켜

법개정·판례변경시 곧바로 반영되는 주석서…100여명 편집위원 구성돼
판결문 공개되며 자료 더 풍부해져 기회, 톰스로이터 인수도 도약계기
“법조, 앞으로 이십년이 지난 2세기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

온주를 들어본 적 있는가?
온주는 온라인 주석서다. 인터넷으로 보는 법률주석서인데 예전의 주석서가 너무 무겁고 큰 데다 몇 개의 법에 한정돼 있고 더군다나 4~5년에 한번 개정판이 나왔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 단점들의 반대를 모아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무활용도 높은 법률 중심으로 100여명의 각 분야 최고 법률전문가가 판례, 법 개정 등 변화에 바로바로 고쳐 쓰고 덧붙이는 온라인 주석서다.

법률분야 정보사이트로는 독보적인 위치에서 지난해 11월, 온주를 출시한 로앤비 대표 안기순 변호사(45·사시 37회)를 만나 법률IT산업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로앤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로앤비는 2001년에 시작했지만 시장 확산이 되기까진 꽤나 시간이 걸렸어요. 온주는 로앤비라는 기반이 있어서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아직은 시장에 알리는 단계입니다. 2007년 대표를 맡을 때부터 구상해왔던 일이고 2011년 상반기부터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을 들여 왔습니다. ‘미래의 주석서’란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해온 것의 구현체랄까요? 아직까진 시용기간이지만 곧 필수이용 사이트가 될 겁니다.”
온주 자랑에 여념이 없는 안 대표가 가장 내세운 것은 최신성이다. 종이주석서의 경우 복잡한 출판과정, 집필진 구성 등 법 개정 후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최소 3년이 걸린다. 반면 우리나라엔 4000여개의 법률이 있는데 이중 매해 3분의 1정도가 제·개정된다. 주석서가 법 개정을 따라가지 못해온 것이 현실. 시장수요문제도 있어 개정이 비교적 적은 기본 육법 정도만 주석서가 있었다. 실제로 실무를 하면서 필요로 하는 실용법들은 오히려 주석서가 나오질 못했다. 온주는 언제 어디서나 접속해 확인할 수 있고 웹 표준을 준수해 만들어져 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에서도 전혀 깨지지 않고 볼 수 있다.
“사용자가 보는 화면과는 다른 집필자 시스템을 따로 만들었어요. 집필자가 편집하고 출판버튼을 누르면 독자가 바로 볼 수 있어요. 언제든 법 개정, 판례변경 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거죠. 이를 위해 관련 변경 정보를 자동으로 집필자에게 알려주는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고요. 주석서 본문에 판례나 법령을 길게 인용할 필요도 없이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지금은 14개의 법 주석서가 나와 있고요, 매년 다섯개 이상의 법을 추가해 나가면서 웬만한 실무용 법률 전부를 포괄할 생각입니다. 기존 주석서 출간 출판사들과도 제휴해 박영사간 근로기준법, 특허법도 곧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온주서비스가 눈에 띄는 점은 편집위원의 면면. 대표 편집위원은 권광중 변호사, 고영한 대법관이다. 윤재윤, 임승순, 임영철, 임종헌, 주완, 최성준 등 법관·변호사를 통틀어 가장 권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주석서를 보고 해당 조문에 단 주석에 대해 별점평가, 의견남기기라는 사용자 피드백 기능이 있다는 점. 관리자만 보고 집필자에게 전달하긴 하지만 콘텐츠의 질을 담보하는 모니터링 기능을 수행한다.
질문을 바꿔 대표적인 한국의 법률정보사이트 로앤비가 다국적 기업 톰슨로이터에 인수된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려고 해요. 우리 법조계가 굉장히 우수한 사람들이 일해 왔고, 그동안의 성취도 많았지만 해외에 제대로 그 성과가 알려졌는가를 보면 그건 좀 아니거든요. 전 세계를 고객으로 하는 글로벌기업을 통해 해외에 한국법, 한국법조인을 알리는 역할을 로앤비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톰슨로이터코리아가 이미 대법원, 법제처, 헌법재판소와 함께 한국의 영문판례와 법령을 웨스트로에 올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전된 법률시장인 미국·유럽의 법조계를 써포트하는 제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톰슨로이터가 보유한 Elite라는 제품은 미·영 상위 100대 로펌의 60%정도가 사용하는 로펌솔루션이죠.”

십여년 전, 한국에서 법률정보사이트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정보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너무 약한 것, 정부나 법원이 나서서 무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점, 한편으로 판결문 등에 정보접근이 어려운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판결문 공개가 점차 확산되어가는 현 추세대로라면 로앤비의 경쟁력은 약화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판결문이 더 많이 공개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되면 이를 로데이터(raw data)로 부가가치 있는 서비스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로앤비에는 판례의 상하급심과 참조판례를 수직, 수평으로 보여주는 판례히스토리와 같은 부가서비스가 있는데, 많은 판례를 이용하면 더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또 판결문 외에도 저작권에 의해 보호되는 콘텐츠들이 많이 있어 이를 더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로앤비를 이끌어가고 있는 안 대표는 법조계에서 IT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적용한 거의 1세대이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에서 법률관련 동아리를 만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로라하는 IT전문가가 되어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연수원 입소 전에 마이너스 대출통장을 만들잖아요. 그걸로 PC를 샀어요. 어렸을 적에 애플2 컴퓨터로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빠져들었죠. 당시 도스용 LX프로그램의 데이터를 이용해 처음으로 LX의 윈도우 버전을 만들기도 했었죠. 법무관 3년차 때 입사가 결정되어 있던 태평양에 로앤비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창업단계부터 참여하겠다고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법조인이 희소했는데 요사이는 이공계 출신도 많고 이제는 IT기술로 법률시장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단계가 된 거 같아요. 저는 개발자가 전문가인 법률가에게 조언을 구하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전문가인 법률가가 IT기술을 직접 익히고,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적인 서비스는 반드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한다기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깊이 있는 통찰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는거죠. 미국에서는 벌써 2011년에 한 IT기반 법률서비스회사가 구글벤처스로부터 200억이 넘는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IT기술발전이 법률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크게 주목해온 리처드 서스킨드의 ‘Tomorrow’s Lawyers’를 읽고 있는데요, 법률조직과 법률가들에게 앞으로의 이십년이 지난 2세기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이끌어 가는 그와 정신없이 대화를 하다 보니 이제까지의 인터뷰 시간 기록을 경신해버렸다. 러닝타임 장장 세 시간의 재밌는 영화를 본 느낌.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로앤비를 다녀온 경험은 미래를 엿본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박신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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