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생물학이 만나면 따뜻해질 수 있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 될 때까지 엄청난 노력 기울여야

“소통은 안 되는게 정상입니다.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16일 대한변협 포럼에서 ‘DNA를 아시나요?-법학과 생물학의 통섭’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사회는 최진녕 변협 대변인이 보았고 최 교수는 호주제 폐지에 막후역할을 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1999년이었죠. EBS에서 어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호주제를 보지 못했다, 있다면 아마도 여성이 호주를 맡았을 것이라는 멘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 헌법재판소 호주제 위헌심판사건 공개변론에서 생물학자로서 견해를 밝히게 됐는데, ‘자연계의 보편적 경향은 여성의 유전자가 훨씬 강력해 모계 유전이며 인간에게 호주제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대개의 나라들에 있어야 하는 제도인데 우리나라만 호주제가 있어 그렇게 보기도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이후 근 1년간 온갖 전화폭력에 시달렸어요.”
그 과정에서 호주제 문제가 남성에게 주는 의미보다 여성에게 더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DNA가 너무나 신봉되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생물학자로서 어떤 책임감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법이 생물학과 만나면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왜 여성살인자의 형량은 남성에 비해 훨씬 높을까요? 기본적으로 여성은 신체조건상 남성을 우발적으로 살인하기가 힘듭니다. 치정사건에서 남성이 살인범인 경우 대개의 남성은 여성이 불륜을 저지른데 화가 나 우발적으로 여성이나 불륜상대를 죽였다고 주장한답니다.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호해 낮은 형량을 받는다는 거죠. 이에 비해 여성은 물리적 힘의 차이로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1~2년 길게는 10년까지 살인을 계획한다고 합니다. 섣불리 죽였다간 자기가 당하니 확실하게 죽여야 하고요. 사실 관계만 보면 여성이 저지른 살인이 훨씬 냉혹합니다. 그런데 또 잡히면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죗값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형량이 더 높은 겁니다.”
최 교수는 서양학자들은 생물학과 범죄론을 오래 연구해왔지만 동양의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말에 동경대 교수와 함께 범죄론을 연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본 교수와 달리 한국 법원과 검찰의 문턱은 높았고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컸다고. 하지만 기록을 잘 해놓는 한국인의 특성 덕분에 서울대 규장각에서 18세기, 19세기 조선시대 검안자료까지 찾아내 결국은 3세기치에 해당하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서양의 범죄 통계와 우리나라의 것을 섞어놓으면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 인간에게 공통된 생물학적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한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최 교수는 소통과 통섭의 의미를 설명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기 때문에 소통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귀뚜라미 수컷은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10시간 동안 두 날개를 비벼댑니다. 소통을 위해 그 정도 노력하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계에서 짝짓기에 성공하는 수컷은 5%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리 민족은 비빔밥 등 식문화에서만 봐도 섞고 조합하는 통섭을 잘 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의 인식부족으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정명택 변호사가 “통섭이라는 단어는 만드신 것인가?”를 질의했고 김지형 전 대법관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성전환자 성별전환 인정 심리에서 많이 고민했던 사안인데 동성애에 대해 생물학에선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질의했다.
최 교수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제가 고민 끝에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불교철학 하시는 분에게서 지적을 받고 알게 됐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화엄을 설명하면서 이미 사용하신 단어라고요. 아마 통섭이 우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원효대사께서 설파하신 사상이 기반이 돼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웃음). 그리고 동성애는 거의 모든 종류의 동물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우리 사회도 그간 터부시되어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계속 있었고요, 염색체를 발견하면서 성을 딱 둘로 규정하게 됐는데 과학의 발전으로 오히려 인식이 퇴보한 경우로 보여 집니다. 중세시대에 는 성을 3개로 보았거든요, 생물학적 판단만으로 규정하긴 어렵습니다만 자연계에 널리 퍼진 현상이라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이날 포럼에는 50여명의 회원이 참석해 진지하게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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