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수 체험기

변호사가 아닌 분들이 저를 ‘변호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저는 참 평범한 개업변호사입니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부산으로 내려왔으니 서울과 수도권에서 생활하시는 변호사님들이 보시면 연수원 출신의 이름 없는 지방 변호사이고, 국내 이름 있는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니 출중한 실력에 상당한 연봉을 받는 변호사도 아닙니다. 많은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일찍 결혼해서 서른 근처의 나이에 시험에 합격하고 7년 가까이 ‘마이너스 통장’을 ‘싫지만 거부하는 할 수 없는 친구’로 삼아 지내왔다면, ‘평범한 변호사’라는 옷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는 변호사임에 틀림없습니다.
‘평범한 변호사’라는 옷을 입고 부산 사투리를 쓰는 변호사…그런 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최근 들어 히죽히죽 입가에 웃음이 머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친한 친구 변호사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곧잘 “영국 간다”고 뽐내며 자랑하는 말을 하는 횟수도 많아졌으니 무슨 좋은 일이 있기는 있나봅니다.
사실은, 제가 대한변호사협회와 영국법정변호사협회(BCEW, Bar Council of England and Wales)가 주관하는 3주간의 연수 프로그램(Bar Council training scheme for Korean lawyers)에 선발되어 2013년 4월 29일부터 5월 17일까지 생전 처음 런던 땅을 밟게 되었답니다(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의 변호사는 법정변호사(barrister)와 사무변호사(solicitor)로 구분되어 있고, 법정변호사는 Bar Council에, 사무변호사는 Law Society에 각 소속되어 있습니다. 영국은 England, Wales, Scotland, Northern Ireland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Scotland와 Northern Ireland는 독자적인 사법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참석하는 프로그램은, 정확히 말하면, England 및 Wales의 법정변호사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늘 바다와 배를 바라보면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해상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유학의 꿈을 키워갈 무렵 대한변협으로부터 위 프로그램에 참여할 변호사를 선발한다는 이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발’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 남의 일로만 여기다가,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밑져야 본전’을 용기 삼아 지원마감일 밤에 지원서를 덜컹 제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좋은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지금은 비행기 표까지 끊어 놓고 출국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저처럼 갑작스럽게 지원서를 제출하더라도 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서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공인영어성적표와 은행거래 내역입니다. 공인영어성적표는 토익, 토플, IELTS 점수 중 하나를 제출하면 됩니다. 저의 경우, 마침 준비하고 있던 LL.M 과정에서 IELTS 점수를 요구하고 있었던 터라 IELTS 점수를 제출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변호사님들이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점수를 얻으려면 마음이 쫓길 수가 있으니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은행거래증명서의 경우, 저도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마이너스 통장을 친구삼아 살아 온 저를 몹시 당황스럽게 만드는 서류였습니다. 비자 신청일로부터 소급하여 3개월 간 일정금액(800파운드) 이상을 유지하면서 거래한 내역을 제출하라는 것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못 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선사건을 하면서 받는 비용이 연수원에서 사용하던 다른 통장으로 입금되고 있어 확인해 보니 위 조건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오~ 국선이여~, 네가 나를 런던으로 보내주는구나”하며 얼마나 흐뭇해 했던지요.
마지막으로 런던에 있는 3주 동안 재판진행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큰 문제였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1년 6개월 전 단독사무실 개업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지금도 함께 생활하고 계신 법무법인 로앤케이(Law & K)의 대표변호사님 두분(강창옥, 고경우)께서 적극 도와주시겠다고 하여 큰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실은, 3주 동안 사건 수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개업변호사로서 더 큰 고민이기는 합니다만, ‘싫지만 거부하는 할 수 없는 친구’로 7년 가까이 지내온 친구를 생각하며 과감하게 그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간의 준비과정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콩글리쉬도 아닌 부산 사투리에 단어를 나열하는 정도의 영어 실력으로 런던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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