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BBC뉴스에서 최초의 이동식 전화통화(mobile phone call)가 이루어진 것을 기념하는 ‘휴대폰 40주년’ 기념 특별기사가 나온 바 있다.
최초의 무선전화 통화는 모토로라(Motorola)의 선임엔지니어인 마티 쿠퍼(Marty Cooper)에 의하여 1973년 4월 3일에 이루어졌다. 이후 각고의 노력으로 모토로라는 1983년 최초의 상용 휴대전화 다이나택(DynaTAC)을 발매한다.
이후 휴대폰은 피처폰(feature phone)을 중심으로 진화하다가 PC와 같은 고급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폰(smart phone)이 90년대에 출시된다. 최초의 스마트폰은 IBM이 제작하여 1993년에 시판되었던 사이먼(Simon)이라는 개인정보단말기이다. 이후 노키아(Nokia)가 1996년에 첫 스마트폰 제품라인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었다(스마트폰이라는 용어 자체는 1997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후로 약 10년 동안 휴대폰시장에서 한 자리 숫자의 시장점유율에 불과하던 스마트폰은 2007년 애플의 아이폰(iPhone) 출시로 혁명적 도약기를 맞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국에서는 필자가 대학에 입학했던 90년대 초반 벽돌(?) 모양의 외제휴대폰을 가끔 보았던 것 같다. 당시 뒤늦게 삐삐(무선호출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필자에게 휴대폰은 그 자체가 흔치 않은 구경거리였다.
한국은 휴대폰의 도입이 미국보다 10년 이상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무선통신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향후 5년, 10년 후에 전개될 변화상은 어떨까 자못 궁금해진다.
서두가 길어졌다. 이번에는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미국에서의 특허분쟁은 특허소송을 관장하는 미국연방법원과 함께 관세법(제337조)에 의거하여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제품일 경우 불공정 무역행위로 수입을 금할 수 있는 미국무역위원회(ITC)에서 주로 처리된다. 금번에는 미국연방지방법원 차원에서 진행된 사항에 국한하며, 다음번에는 미국무역위원회(ITC)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어 볼 것이다.
앞서 휴대폰의 약사(略史)에도 나타나 있는 것처럼 미국은 휴대폰과 스마트폰의 원조기업과 스마트폰 혁신의 주창기업의 본사가 모두 있는 곳이자 세계 최대의 휴대폰 시장이다. 2012년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1위에 빛나는 삼성전자가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벌이고 있는 애플과의 특허소송은 한국기업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차원에서 대중적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금년 4월 15일이면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이 미국에서 개시된 지 꼭 2년이 된다. 2011년 4월 15일,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에 삼성의 갤럭시S 등 여러 개의 스마트폰 및 갤럭시탭 10.1 등이 애플의 특허(7건), 디자인 특허(3건), 트레이드 드레스(8건), 상표(8건)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중 특허는 UI 표시방법, 리스트 스크롤, 회전 등에 대한 것이다. 또한 디자인 특허는 디스플레이 스크린용 GUI, 아이폰과 아이패드 제품 디자인 등이었다.
한편 트레이드 드레스는 아이폰, 아이팟 터치, 아이패드 제품 형상 및 패키징 등이었고, 상표는 아이폰 앱을 나타내는 아이콘들이었다. 삼성 역시 2011년 4월 27일 표준특허 등의 침해를 이유로 애플을 상대로 같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미 예상되었던 것처럼 미국 본토에서의 특허소송은 삼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2012년 8월 이 사건의 배심원이 애플의 주장을 대거 받아들여 삼성에 10억5000만 달러(약 1조14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액을 평결했을 때만 해도 삼성에 불리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은 배심원이 평결한 배상액을 절반가량(5억9950만 달러)으로 낮추고 일부 제품에 대해서는 새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여름 배심원의 평결 때만 해도 애플은 삼성이 자사의 제품을 베꼈다는 명분과 천문학적인 배상금이라는 실리를 함께 챙기는 듯하였으나, 이후 배심원장의 부적절한 행위(misconduct)에 대한 의혹과 배심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반전의 계기가 조성되었다.
결국 법원은 배심원장의 부적절한 행위를 지적한 삼성의 재심 청구와 애플의 추가배상 요구를 모두 기각했지만 결국 최종 판결에서는 일부 제품에 대하여 새로운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된 상태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애플이 삼성에 대하여 제기한 특허소송이 기존 특허소송의 도식과는 다소 다른 쟁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휴대폰 사업자로서 후발주자인 애플은 다른 선행사업자들과 달리 통신기술에 관한 특허보다는 자신이 보유한 디자인특허(design patent)와 제품의 모양과 느낌을 나타내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에 기하여 삼성에 지속적인 공세를 취하였다.
미국의 특허재판은 여느 민사재판과 마찬가지로 배심제로 진행될 수 있다. 이 경우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표준특허와 같은 전문적 기술지식이 요구되는 문제보다는 누구든지 판단할 수 있는 디자인이나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여부에 관한 판단에서 훨씬 부담을 덜 느낀다고 한다. 삼성을 애플의 모방자(copycat)로 몰아가려는 단순하지만 집요한 애플의 소송전략은 이 사건에서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다소 경시되었던 디자인권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혹자는 삼성이 표준특허라는 강력한 무기로 야심차게 애플에 반격을 펴고자 했으나 표준특허의 ‘FRAND 선언’이라는 내재적 한계로 말미암아 예상치 못한 고전을 펼쳤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번 특허전쟁을 통하여 표준특허가 전가의 보도(寶刀)가 아니라 주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양날의 칼로 인식되면서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던 표준특허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삼성과 애플 두 회사는 미국에서 2년간의 법적 공방을 치르면서 막대한 소송비용을 지불하였고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기의 소송’이란 수식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양 회사는 당초 의도하지 않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사실 삼성이 애플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하기 전만 해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인지도는 애플을 따라가지 못했다. 애플의 소송 상대가 삼성전자라는 사실과 소송 진행상황이 연일 기사화되면서 삼성은 애플이 가장 경계하는 경쟁자로 각인되는 수확을 챙겼다. 이를 통하여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전체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가 상승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어낼리틱스(SA)에 따르면 2012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0.4%, 애플은 19.4%로 양사가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며 1위를 두고 주도권을 다투는 모양새이다. 특허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2010년 삼성전자 점유율은 8%로 업계 4위에 불과했고, 애플 역시 15.9%로 업계 3위에 불과했다(당시 스마트폰 업계의 부동의 1위는 노키아였고, 2위는 블랙베리로 유명한 RIM사였다).
2년 만에 두 회사가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에는 다른 다양한 요인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특허전쟁을 통하여 의도하지 않았던(적어도 최초에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생기면서 결과적으로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필자가 지금 이러한 기고문을 연재하고 있는 것도 양사가 들인 천문학적인 소송비용에 대한 자그마한 수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지원 서울대 법무팀장 변호사
snulaw@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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