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사고 후 의례히 많이 찍어 대는 MRI·CT
방사선·전자파 유해성 입증 안 됐다고 해가 없을까?

점심 무렵에 전화를 한통 받았다. “언니 저 교통사고 났었어요.” 한달 전쯤에 뒷차에 받혔는데 아직도 어깨가 아프고 목이 뻣뻣하니치료를 오겠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에 나도 교통사고로 병원신세를 며칠 지내고 나왔던 터라 순식간에 교통사고에 대한 격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서 병원에 갔더니 아프다는 곳은 죄다 사진을 찍더라는 것부터 교통사고 후 통증이 사람들 말처럼 진짜 몇 일 지나니까 더욱 아파졌더라는 둥, 교통사고 환자가 많은 병실은 기피하고 싶다는 취향까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한의원에서도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싶은데 첩약은 처방을 내려 다려먹을 수 있다 치더라도 침구치료는 본인이 스스로 하기에는 난감하니 만나서 서로 치료를 해주자는 다짐으로 전화를 끊었다.
한의원에서도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치료가 가능하다. 물론 골절이나 출혈을 동반한 외상의 경우와 같은 심한 증상은 어렵지만, 간단한 접촉사고 이후에 통증이나 불편함을 개선하는 치료는 효과도 좋고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정작 교통사고로 불편해 하면서도 교통사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자니 누워서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것도 복인가 싶은 것이 부럽기까지 하다.
교통사고 치료 중에 병원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환자들이 있다. 치료의 편의성이나 다양성을 위해서 병원을 옮겨야 할 때 새롭게 검사를 다 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만해도 집근처의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 사고 당일 내원했던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복사해서 가지고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경위를 말하고 사진을 내놓았지만, CD는 접수도 받지않고 같은 부위라도 사진이 다 다르므로 쓸 수 없으니 자기 병원에서 다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아프고 사람들과 여러 말을 하기 싫어서 그리했지만 이게 나만이 겪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본인이 진료비를 내지 않는 상황에서 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을의 입장이 되어서는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치료해주시는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나에게 오히려 손해가 될까 싶어서 ‘그냥 찍고 말지’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의료비의 과다청구와 같은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환자들이 반복적으로 방사선에 혹은 전자파에 노출되는 것을 별로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는 좀 불편하다.
비단 교통사고 환자들뿐만 아니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온갖 검사를 반복하는 환자들이 있다. 유명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는 것이 일종의 위안과 자랑이 되는 이 환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국내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도 의심이 풀리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같은 검사를 받고 또 받는 동안 몸에 쬐어지는 방사선이나 전자파는 과연 해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냐는 것이다.
전자파는 ‘정확한 위험과 질병과의 연관성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해가 없다’는 식의 무죄추정 원칙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 X선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연간 피폭 허용치를 넘어서 찍어대는 환자가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을 찍어도 해가 될 수 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찍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찍는 것이라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의료용 사진촬영이 셀카만큼이나 쉽고 흔해진 시대에, 눈으로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위기에서 살면서 이렇게 말하는게 미련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특히 세포분열을 왕성히 일어나는 생식기 부위가 같이 찍히는 상황이라면 정소 부분을 납치마 같은 것으로가려주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과, 성장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는 어린이나 태아의 경우라면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어도 나쁠 것은 없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멀쩡했던 허리가 시름시름 아픈 것이 자꾸 신경이 쓰이지만 가해차량운전자의 계약관계로 모든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태도가 더 서운하다. 아마도 지금의 나에겐 진료비 왕창 나오는 MRI 시리즈가 아니라 인간적인 위로나 배려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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