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저작권법 제28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2011. 12. 2. 법률 제11110호로 개정된 저작권법)은 제35조의 3을 신설하였다. 제35조의 3(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제1항은 “제23조부터 제35조의 2까지, 제101조의 3부터 제101조의 5까지의 경우 외에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소위 일반적 공정이용조항을 입법하였다.
저작권법 제35조의 3은 그 조문의 문언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보충(補充)적 규정으로 기존에 열거되어 있던 저작재산권 제한 규정(사유)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여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제2항은 저작권 침해 여부가 문제가 되는, 저작물 이용 행위가 제1항에 해당하는지를 판단시 고려하여야 할 사항으로, “영리성 또는 비영리성 등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제35조의 3이 입법되기 전에 저작권침해여부가 문제가 된 사안으로서, 기존의 저작권법상 저작재산권 제한사유의 해석에 대해서 그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건 대상판결은 제35조의 3이 입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논리적인 판단의 순서는 우선, 제28조에 해당하는지를 보고, 그 이후에 다시 제35조의 3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므로, 저작재산권의 침해에 대하여 판단의 단계가 개정을 통하여 바뀌었을 뿐, 제28조가 적용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므로 제28조의 해석 및 신설된 제35조의 3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준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II. 사실관계

1. 사안의 개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이 사건 논문을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라 한다)에 ‘리프리놀 - 초록입홍합 추출 오일 복합물’을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기 위하여 저자들의 동의 없이 최신의학 Vol. 45., No. 5(2002년)에 게재되어 있던 이 사건 논문 전체를 직접 복제하여 식약청에 제출한 행위가 문제되었다. 이 사건 논문은 원래 공소외 2 주식회사가 리프리놀을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고자 그 신청을 위하여 공소외 3 등에게 의뢰하여 작성된 것이었다. 공소외 2 주식회사는 2004년 이 사건 논문을 근거자료로 제출하여 식약청으로부터 ‘공소외 2 주식회사 리프리놀-초록입홍합 추출 오일복합물’을 건강기능식품의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았다. 공소외 4 주식회사는 공소외 2 주식회사와의 계약을 종료한 공소외 1 회사 본사에서 2008년 5월경부터 리프리놀을 수입하여 판매하게 되었는데, 공소외 4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이던 피고인이 저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 사건 논문을 행정청인 식약청으로부터 건강기능식품의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2. 대법원의 판단
(1) 저작권 침해인지 여부
저작권에 관한 계약을 해석함에 있어 그것이 저작권 양도계약인지 이용허락계약인지가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저작권 양도 또는 이용허락되었음이 외부적으로 표현되지 아니하였으면 저작자에게 권리가 유보된 것으로 유리하게 추정함이 상당하고, 계약내용이 불분명한 때에는 구체적인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거래관행이나 당사자의 지식, 행동 등을 종합하여 해석함이 상당하다(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29130 판결 등 참조).
저작권 침해의 점에 대한 쟁점은 이 사건 공소외 4 주식회사가 저자들로부터 사용허락을 받지 않은 것은 다툼이 없으므로, 새로운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공소외 4 주식회사와의 관계에서 공소외 1 회사 본사가 이 사건 논문에 대한 저작권을 양수받았다거나, 그 사용을 포괄적으로 허락받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고, 이 사건 논문의 작성 경위, 공소외 1 회사 본사와 공소외 2 주식회사 사이의 대리점 계약의 내용 등 판시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이 사건 논문의 저자들이 공소외 1 회사 본사에 이 사건 논문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하였다거나 포괄적 이용허락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2) 저작권법 제28조의 적용여부
대법원은 저작물의 공정이용은 저작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라고 하는 대립되는 이해의 조정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므로 공정이용의 법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 요건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을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인데, 구 저작권법(2009. 3. 25. 법률 제95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은 이에 관하여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으면서 제23조 이하에서 저작재산권의 제한사유를 개별적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므로, 구 저작권법 하에서는 널리 공정이용의 법리가 인정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여, 구 저작권법 하에서는 일반조항으로 공정이용의 법리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피고인의 주장을 선해하여 저작권법 제28조에 의한 면책이 가능한가에 대하여 살피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이 사건 논문을 사용하여 식약청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경우 이를 이용하여 제조한 제품의 판매로 상당한 이익이 예상되고, 통상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광고처럼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자나 저작권자가 속해 있는 단체로부터 허락을 받아 이용하고 있는 사실 등에 비추어보면, 학술정보데이터베이스 제공업자로부터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논문 복제물을 구할 수 있는 피고인이 논문 전체를 사용 복제하여 식약청에 제출한 행위는 구 저작권법 제28조 소정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그 외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라는 제30조의 주장이 있었으나 역시 배척되었다.

III. 평석

1. 저작권법상의 공정이용 규정 체계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독일이나 일본 저작권법과 같이 제23조 내지 제37조에서 상세한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의 해석에 대해서 한정적인 열거규정으로 이해하는 통설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해석론은 우리와 같은 규정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다수설에 의하면, 저작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저작재산권의 제한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게 된다. 본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하는 저작물의 이용행위에 대한 제한은 법문에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소수설은 어느 행위가 개별적인 권리제한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경우에는 저작권법의 목적규정을 해석하여 공정한 이용에 해당하다고 보아 침해행위를 부정할 수 있다고 본다.(오승종, 저작권법, 543면) 대상 판결에서 대법원은 구 저작권법의 저작재산권 제한 체계가 예시규정이 아니라, 한정열거라는 다수설과 같은 견해를 취하였다.

2. 저작재산권 제한 규정의 해석
한편 저작권법상의 저작재산권 제한 체계를 한정적 열거로 보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저작재산권의 제한이 필요한 경우에도 규정상의 문제로 저작재산권이 제한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입법기술적으로 아무리 자세하게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을 입법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발전과 새로운 저작물의 등장, 그리고 새로운 저작물 이용행태의 등장으로 인해서 새로운 입법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사전에 모두 예상해서 입법할 수 없다면 우리처럼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저작재산권 제한 규정을 둔 국가의 경우에는 해당 조문을 유연하게 해석하여 대응할 수밖에 없다. 실제 제한규정들은 불확정개념을 사용하여 규율하고 있고 이러한 불확정개념의 해석을 통하여 제한이 확장될 여지가 있다.
제28조의 경우에도‘정당한 범위 안에서’라거나, ‘공정한 관행’과 같은 불확정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기존의 통설적인 견해인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엄격(嚴格)성을 요한다는 견해(오승종, 전게서, 545면)를 따랐다. 이 견해는 권리제한규정은 권리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권리내용을 공익성 등 특별한 요청에 따라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그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해석을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불확정개념의 해석은 부득이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대법원도 제28조의 적용여부를 해석함에 있어 정상성 판단을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공정이용 판단의 제요소들을 이미 감안하고 있다.

3. 판결의 시사점
이 판결이 선고됨에 따라,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은 한정적 열거로 해석되어야 하며, 각 제한규정의 해석은 엄격하게 새겨야 한다는 점은 대법원의 판결이 되었다. 다만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은 1976년 개정된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와 같은 공정이용 조항이라고 볼 수 있는 2011년 저작권법 제35조의 3(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이 입법됨에 따라 이제 열거된 각 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일반조항인 제35조의 3에 따라서 공정이용으로 판단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 사건 논문의 전체를 복사하였다는 점에서 저작물 전체에서 복제된 부분이 차지하는 양적비율을 고려하였고, 당해 복제행위로 인하여 그렇지 않았으면 받을 수 있었던 저작권료가 발생하지 않게 되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당해 저작물을 사용한 것이 자신들이 식약청의 승인을 받아서 상업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제35조의3이 고려요소로 하는 사정들을 이미 감안하였다. 따라서 가지게 되는 의문은 이 사건이 만약 제35조의 3이 적용되는 사안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향후 제35조의 3과 개별적으로 한정·열거되어 있는 조문들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여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이 사건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다고 본다.

/최승재 변호사·법학박사
sungjai.choi@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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