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탤런트가 강간 혐의로 기소되었다. 법정에서 다시 한번 시비가 가려지겠지만 성관계 자체를 시인한 이상 쟁점은 ‘마음을 나눈’ 것인지, 심신미약 상태를 이용한 강간인지가 될 것이다. 강간과 화간의 경계는 성범죄의 영원한 화두다. 그리고 국선전담변호사로 약 1년간 성범죄 전담 재판부의 사건을 담당했던 나를 종종 낙심하게 한 주제이기도 하다.
‘억울하다. 그때는 분위기 좋았다. 강압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들 역시 ‘마음을 나눈 것’이라고 한다. 그럴 만한 분위기였고, 서로 합의가 있었으며 직후에도 별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의 돌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원칙대로라면 공소사실의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구성요건에 따라 강간은 ‘폭행 협박’ 준강간은 ‘심신상실’상태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송의 실제는 반대로 피고인이 성관계의 ‘합의’를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이미 피고인을 향해 고소의 칼날을 빼든 여성을 상대로 그 합의의 입증은 불가능에 가깝다. 법정에 나온 여성들은 하나같이 피고인을 향해 원망과 눈물, 때로는 절규를 쏟아냈다. 이에 나의 피고인들은 여지없이 참패했다. 애인 사이의 성관계이든, 모텔에서 이루어진 성관계이든, 아니면 깊은 밤에 여자가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 상태에서 이루어진 관계이든 예외가 없었다.
수사기관의 기소 이유 혹은 법원의 유죄판단 이유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해당 여성의 진술의 구체성이다. 그 상황에서 그런 일을 직접 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자세하게 진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마음을 나눴다는 피고인의 진술 역시 그 못지않게 구체적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피해 여성의 태도’이다. 이것이야말로 유죄 이유의 핵심이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면 피고인을 원망하고 고소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를 호소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피고인의 죄책은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그것치고 그 결과는 너무도 혹독하다. 수년간의 징역형은 물론, 신상정보의 인터넷 공개에 전과사실 고지까지 따라붙는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성폭행범으로 낙인이 찍히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셈이다.
성범죄자를 엄벌하자며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성범죄 수사에 최정예 검사를 배치한다고도 하고 형량을 대폭 상향한다고도 한다. 6월부터는 친고죄 규정도 폐지된다. 성범죄자는 도저히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이 될 듯하다.
물론 엄벌의 필요성도 있다. 나 또한 여성으로서 ‘강간은 영혼의 살인’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입증하라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작금의 성범죄자 엄벌 분위기가 도를 넘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특히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던 성인 남녀간의 성관계에 있어, ‘마음’의 입증 여부에 따라 유죄 여부가 갈리는 상황의 경우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달 영국 법원은 엘리자베스 존스라는 22살 여성에게 16개월 형을 선고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거짓으로 고소해 사법절차를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경찰이 CCTV 증거를 들이밀자 존스는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나니 꼴도 보기 싫어져서 강간범으로 신고했다고 털어놨다. 존스의 강간 신고는 이번이 벌써 11번째였고 거짓 신고로 혼쭐난 남자들만 여럿이다. 마지막 피해자의 푸념이 재미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그는 재판결과에 대실망했다고 한다. 존스가 자신에게 한 짓에 비하면 16개월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세상에 억울한 여자들보다 억울한 남자들이 더 많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내 생각에도 억울한 여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억울한 여자가 100명이라면, 어림짐작이지만, 억울한 남성이 1명 정도는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억울하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여자든 남자든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사법기관과 법조인이 할 일이다. 성범죄자에 대한 엄벌 분위기 속에서 검찰에게도, 경찰에게도, 법원에게도, 변호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잘 안다. 그래도 끈질긴 수사로 존스를 법정에 세운 영국 형사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짓 신고는 진짜 성폭행 피해자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어렵게 한다.’ 억울한 남자들을 구제하는 일은 동시에 억울한 여자들을 구제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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