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3월 29일 ‘기초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 폐지 공약, 즉각 실천하라’라는 성명을 통하여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다가오는 4·24 재·보선에서부터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 후보자에 대한 무공천 공약을 실천하고, 기초단체선거에서의 정당공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4월 1일 내부 절차를 거쳐, 해당 지역사정에 따라 특별한 이견이 없는 한 4·24 재보궐 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반면 민주당은 재보궐선거가 다가온 상황에서 당장 무공천을 추진하는 것 보다는 정치쇄신특위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실상 이번 기초선거에서의 공천 의사를 명확히 하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 대선 후보는 정치 쇄신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정착을 위해 기초단체장 및 의회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한목소리로 공약했다. 새누리당의 이번 결정은 비록 ‘조건부 무공천’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적어도 공약 실천 의지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느 당이 여당이고, 어느 당이 야당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정당공천제의 폐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방에서의 정당 기능의 축소와 여성의 공직 진출 기회가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지방 명망가나 지역 토착 세력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의 비민주성,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두드러진 한국 사회에서는 정당공천제에 따른 각종 폐단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이로 인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부른다. 지방정부와 의회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정치참여가 확대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주민들이 정치적으로 훈련될 뿐만 아니라 새 정치지도자도 양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가 2005년 8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한 이래, 지방선거는 정책이나 인물중심이 아니라 정당중심의 ‘묻지마’식 투표로 전락했고, 지방이 중앙에 예속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도 심화되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전국적 일당독점 현상이 발생하였고, 투표율 또한 1995년에 68.4%였던 지방선거 투표율이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에는 51.6%, 2010년에는 54.5%로 추락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게다가 공천비리 등 불법선거사범과 지방의회 의원의 뇌물 비리 등이 급증하면서 정당공천이 지방의회 의원 자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방자치 6기가 시작된 2010년 7월부터 2년간 선거법 위반, 뇌물 수수 등의 비리행위로 형사 처벌된 기초의원만 49명에 이른다.
지방의원 유급제와 결합된 정당공천제의 폐해는 이제 지방자치 제도의 존립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재·보선에 따른 추가적 비용 지출과 지방 행정의 마비는 온전히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초단체 선거의 정당공천제는 폐지하는 것이 정답이며, 폐지에 따른 문제점은 정당 민주화, 남녀동반선거구제 내지 여성 일부 할당제, 후보자에 대한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의 감시강화 등을 통하여 극복해 나가면 된다.
결국 국회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기초단체선거 정당 무공천을 제도화 하고, ‘정당의, 정당에 의한, 정당을 위한 선거’로 빈사상태에 빠진 지방자치제를 살려낼 책임이 있다.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 등이 지난해 9월 11일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원,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상태이므로, 여·야는 조속한 시일 내로 합의를 통하여 해당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 선거는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선거’여야 한다. 정당공천 폐지를 통한 정치쇄신 약속의 실천. 그것이 바로 여야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첫 걸음이자 썩어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리는 첩경이다.

/최진녕 변호사·변협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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