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특허전쟁 관전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는 우연한 조찬자리에서 편집인(대한변협 공보이사이시기도 하다)의 도전적인 제안을 필자가 수락하면서 비롯되었다. 편집인께서는 시사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회원들에게 유익한 글을 써보라고 부탁하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에게 없었던 그러한 능력이 이번 계기로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우선 글의 성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주된 독자가 법조인이라는 점에서 파편적인 법률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국제적 특허분쟁을 시사성 있는 소재거리로 삼아 이것이 우리의 생활과 무관하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가질만한 문제라는 것을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부담 없는 읽을거리를 쓰고자 한다.
우선 ‘관전기(觀戰記)’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에 대한 변(辨)을 드리자면, 현재 진행 중인 일련의 특허전쟁에 대하여 학창시설 국어시간에 배웠던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필자는 기업에 고용되어 있거나 로펌에서 특정 기업을 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지 않아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부담 없이 임하고자 한다. 물론 완벽하게 객관적인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이야기를 하기 전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다른 제품으로 갈아탈 개연성이 높은 갈대(?) 부류에 속하는 소비자에 속한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마니아 유형에 속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잦은 언론보도를 통해 이제는 익숙해진 삼성전자와 애플사 간의 특허소송은 ‘특허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 주요 각국에서 전선(戰線)을 확장하며 현재 진행 중에 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2011년 4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제품에 대하여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 소송은 애플이 먼저 4월 15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후 공세적 대응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삼성은 한국에서 소를 제기한 그날, 독일(만하임지방법원)과 일본(동경지방법원)에도 특허침해를 이유로 애플을 제소하였다. 다음 번 글에서는 한국에 이어서 미국, 독일, 일본 순으로 삼성과 애플간의 특허소송의 주요 경과와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할 예정이다.
다시 한국이야기로 돌아와 애플은 두 달이 지난 2011년 6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매 기일 진행 때마다 각종 언론의 플래쉬 세례를 받았던 위 소송들은 작년 여름 2012년 8월 24일에 각각 선고되어 일단락되었다. 애플이 피고인 사건에서 1심은 원고 삼성전자의 이동통신 시스템 비-스케줄링 전송 특허(975 특허)와 패킷 데이터 송수신 관련 특허(900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하였다. 삼성의 특허들은 알려진 바와 같이 3GPP 표준특허에 해당한다. 애플이 원고인 사건에서는 1심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터치스크린 관련 특허 1개를 침해했다고 판단하였다. 법원이 침해를 인정한 바운스백 특허(120 특허)는 터치스크린 상 가장자리에 도달했을 때 튕겨지는 기술이다. 양 사는 1심 판결에 각각 불복하였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 계속 중이다. 한국의 1심 판결을 두고 일부 국내 언론은 사실상 삼성의 승리라고 승전보를 전하기도 했으나, 외신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다소 이례적인 판결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 재판이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도 양 사는 아이폰5, 갤럭시S4와 같은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면서 시장에서 활발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1심 판결이 양 사의 이미지와 영업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대목은 1심 판결의 결과가 아니라 판결의 이유 부분에 있다. 각국의 법원은 특허법의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자국에 출원·등록된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기준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확인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각국에 출원·등록된 특허권의 권리범위와 증거조사를 거쳐 밝혀진 사실관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회사가 각국의 특허침해소송에서 펼치는 주장(항변 포함)의 내용에는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는 특허법의 보편화, 국제화 추세에 따라 각국의 특허법 법리와 재판실무가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삼성의 특허침해 주장에 대하여 애플은 비침해, 특허 무효, 특허권 소진, FRAND 선언 위반, 공정거래법 위반의 점 등을 다투었다. 근래 특허침해소송에서 ① 상대방의 특허가 신규성, 진보성 등이 결여되어 무효라는 항변 ② 특허권으로 정당하게 허용되는 범위를 넘는 권리행사라는 권리남용의 항변 ③ 특허권의 행사가 독점규제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항변 등은 거의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 항변들은 넓게 권리남용의 항변에 속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특허권의 남용을 사법적(司法的)으로 규율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불가피론과 법원에 의한 권리남용 법리의 남용가능성(?)을 우려하는 신중론으로 의견이 나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표준특허의 권리남용 여부와 관련하여 표준특허권자인 삼성의 FRAND 선언 위반의 문제를 살펴본다. FRAND 선언이란 특허권자가 자신의 특허가 산업표준으로 채택된 이후에도 공정하고(fair), 합리적이며(reasonable), 비차별적인(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제3자에게 실시하겠다고 표준화기구에 서약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1심 법원은 FRAND 선언이 이루어진 표준특허의 경우에도 특허권자는 여전히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삼성전자에게는 유리한 것이나 대개 표준기술을 라이선스하여야 하는 여타 국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향후 부담이 될 수 있다. 즉 FRAND 선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준특허권자와 라이선스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사업자는 표준기술이 구현된 제품을 폐기하거나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FRAND 선언이 침해금지청구권의 포기에 해당하므로 표준특허권자는 손해배상청구만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아울러 우리 1심 법원은 특허권 남용을 판단함에 있어 특허법의 목적 내지 공공정책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질서와 거래 질서를 어지럽히고, 상대방 등에 대한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지 여부는 모두 포괄하여 특허권의 남용 여부를 판단하였다. 이는 특허권 남용이 명문의 근거도 없고 법리상 확립되지도 아니한 상황에서 민법상 권리남용금지를 변용하여야 하는 법원의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보인다.
한편 민법상 권리남용과 달리 특허권 남용을 판단함에 있어서 주관적 요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지 않은 점은 향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그 귀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말씀드리는 글로벌 특허소송이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력한 사업자 간의 특허소송은 일도양단식의 판결로 종결되기보다 소송 중에 합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사업을 계속 영위하기 위하여 특허소송의 당사자는 사후적(ex-post)으로 손해배상액을 포함한 로열티 합의를 하기 마련이다. 시기를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삼성과 애플의 소송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특허기술의 실시에 대한 대가인 로열티 책정이 과도할 경우 이는 생산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적정한 수준을 넘어선 표준특허권자의 로열티 부과는 로열티 스택킹(royalty stacking)을 야기하고, 사업을 계속 해야 하는 상대방은 이를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과열양상을 띤 특허분쟁으로 인한 비용과 대가는 결국은 소비자가 부담하는 꼴이 된다. 글로벌 특허전쟁의 최종적인 승자는 삼성도 애플도 아닌 양사를 대리하는 글로벌 로펌이라는 자조 섞인 코멘트가 그래서 요즘 더욱 와 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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