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을 지어서 대화하고 토론하며 논쟁’하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하브루타(chavruta)’라고 한다. 유대인들이 오늘날 전 세계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게 된 원동력은, 가정이든 학교든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질문과 토론을 하는 그들의 독특한 공부방법이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어릴 때부터 개발하는 훈련을 선택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질문도 많이 하고 수다도 심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어머니께 하루의 일과를 낱낱이 쫑알거리며 얘기하면 어머니는 눈에 본 듯이 후련해하셨다. 수업 중에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바로 질문을 하고 의문을 풀어야 했다. “선생님!” 번쩍 손을 들며 외치는 소리에 짝꿍도 선생님도 화들짝 놀라기가 일쑤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들의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였거니와 질문을 한다는 사실로 뿌듯해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의 경험 이후로 난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기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청동이 구리보다 경제적이라고 하셨다. 나는 궁금증이 발동하였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을 더하여 합금한 것인데, 어떻게 구리보다 싸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짝꿍은 그날도 내 외침에 깜짝 놀라야 했고 한참 동안 진도는 멈췄다. 경제적이라는 말이 단위 무게 당 가격의 의미란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서야 내 질문은 멈추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앞으로 질문은 수업 끝나고 하라”며 무서운 눈초리로 쐐기를 박으셨다.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 내 자신은 부끄럽지 않았으나, 내 질문이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궁금증이야 그 순간이 지나 버리면 시들해지기도 하고, 혼자서 궁리하다 나름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타이밍을 놓쳐버린 내 호기심은 속으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질문을 하지 않는 아이로 길들여져 갔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가 부끄럽기 시작하였고, 정답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을 때 자신이 있게 말할 용기가 사라졌으며, 틀렸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두려움도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고정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력이 상실되고 반복적인 학습에 잘 순응하는 조용한 아이, 어른들의 표현으로는 점잖아지고 신중한 아이로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노년은 시작된다”고 하였다. 또한 월트 디즈니는 “나이 70이 되어서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래요. 나는 호기심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이 호기심 때문에 월트 디즈니를 만들었고, 이 호기심으로 우리 디즈니랜드는 성공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무애(无涯) 양주동 선생은 기하(幾何)를 처음 접하면서 ‘몇 어찌’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세수하는 것도 잊고 등교한 후, 선생님으로부터 기하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야 궁금증을 풀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발의심(發疑心)’과 새 세계에 대한 ‘경이감(驚異感)’을 잃지 않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들은 호기심을 젊음의 기준이자, 성공의 조건으로 본 것이다. 또한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중학교 때 그날 이후로 나의 노화는 시작되었고, 나는 범부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길들여졌고, 머리 위에 매달고 다니던 온갖 물음표를 하나씩 잃어버리면서 청춘을 놓쳐버렸다. 무수한 물음표가 없으니 가끔씩 있었을 느낌표조차 보지 못하고 살았으리라. 이제는 긴 세월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호기심과 경이감을 하나씩 끄집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삶을 청춘의 연초록빛으로 다시 빛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