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환 전 대법관이 사법연수원에서 한 강연내용에 여성비하 의미가 있다는 보도가 있은지 얼마 안 돼 여성변호사회가 항의 성명을 내고 박 전 대법관이 사과하는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이런 즈음 대형로펌에 근무하는 한 여성변호사가 편집인에게 이메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현재 여성변호사들의 상황에 대한 소견을 담은 글로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지만 한정된 지면 탓에 전문을 게재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저는 대형로펌, 업무량도 상당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4~5년차로 결혼했고 아기가 있는 여성변호사입니다. 물론 매일매일 전투태세로 살고 있습니다. 박시환 전 대법관님 발언을 접하고, 두서없이 적어 보려 합니다. 일단 박시환 전 대법관님 말씀은, 현실 그대로입니다. 저희 펌에도 일에 치여 결혼하지 못한 여성변호사들이 많고 이혼한 변호사들도 많으며 이는 한국변호사·외국변호사를 불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포함, 정말 제 시간은 없이 아등바등 살고 있습니다만 결혼하고도 육아와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실상을 알려주면서 대형로펌은 이런 실상을 가지고 있으니 삶의 질도 중요하다는 조언, 후배 변호사들에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저는 그분 말씀이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런 발언은 박시환 전 대법관님이나 기성 법조인들이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성 법조인들은 그런 열악한(사실 남녀 모두에게 열악한)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바꾸어야 할 사람들이지, 환경이 그러니 젊은 변호사들은 적응해라 그리고 정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여성변호사들은 대형로펌을 아예 가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변호사가 로펌 변호사 업무에 적성과 재능이 있고 본인이 원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펌을 기피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더라도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관행이 정착돼 버린다면요.
로펌 입장에서도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절반가량의 여성들(그 중에 유능한 변호사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을 버리고 가는 것은 손해가 아닐까요? 시장에 배출되는 여성들의 수가 적다면야, 그 귀찮은 일(최소한 출산휴가, 육아휴직, 현재 상황에서는 육아부담 : 이것은 남녀 같이 하게 되면 여성 만의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요)을 하느니 소수의 유능할 수도 있었던 여성변호사를 버리고 가면 그만이었겠지요. 옛날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이 여성입니다. 그들을 다 버리고 가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대형 로펌 리더들 중 좀 깨인 분들(제 생각엔 시장분석을 잘 하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은 이런 현상을 자각하고 전반적인 근무여건을 좋게 해서 잘 훈련된 여성변호사들이나 잘 훈련된 남자변호사들(착취당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상해)이 못 버티고 나가는 일이 없도록, 그래서 유능한 인력이 새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올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것들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외국 로펌들은 이미 그렇게 시행하는 곳들도 많고요. 그런데 이처럼 기성 법조인들이 업무환경에 대한 반성과 개선을 다짐하면서, 우리들이 고치려 노력하겠으니 재능 있는 여성변호사들은 꿈을 포기하지 말고 로펌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라, 처음엔 힘들겠지만 개선되어 갈테니 같이 잘 해보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이 그러니 여성변호사들은 개인의 안정을 추구하라는 조언은, 나쁜 의도는 아닌 것을 충분히 알겠지만 그래서 더 슬플 정도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발화가 그냥 선배 언니 변호사의 발언이었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기성 법조인의 발언이고, 너무 일반적인 시각이며 또 착한 발언이어서 참담합니다.
저는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에서의 성취와 경쟁이 전부가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가정이 없는 분들이라면 자신의 취미활동을 하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한번 사는 세상에서 조금 더 인간다움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지향점을 그곳에 두고 같이 나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일도 잘 할 것이라 생각하고요.
저는 후배 여자 변호사님들이 로펌에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변호사라는 업무는 매우 매력적이고 또 충분히 도전해 볼 영역이기도 하고요. 적극적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날것 그대로의 로우(raw) 데이터를 만지며, 법리와 논리를 세워 변론하고 승소하는 기쁨은 다들 아시겠지만 정말 즐겁습니다. 그런 기쁨을 열악한 업무환경과 살인적 경쟁 때문에 매일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입니다.

/박형연 대한변협신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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