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1756~1791)의 고전주의를 계승하여 낭만주의의 문을 연 베토벤(1770~ 1827)은 14세의 나이에 생전의 모차르트를 찾아가서 천재성을 인정받고 무료로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모차르트의 훈도를 받은 지 한달여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여 베토벤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시 빈으로 돌아온 때는 모차르트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1년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두 사람이 더 오래 생존하여서 천재성을 교환했다면 후대의 우리는 더 행복하였을 터인데 말입니다. 고고한 베토벤이 모차르트에 경복한 그 단적인 예가 첼로로 연주되는 두개의 마술피리 주제 변주곡 모음입니다.
베토벤이 여러 여성과 염문을 날리면서도 끝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끝내자 호사가들은 그가 찾던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가를 지금까지 찾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여성상은 그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의 주인공인 레오노라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정숙은 기본이고 상대방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희생하겠다는 결의에 넘치는 여성이 구원의 대상이고 가곡집 멀리 있는 연인에게 바침도 그 연장선이라고 보입니다. 이런 베토벤의 성격에서 모차르트 최후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대하여 혐오감을 표시한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닙니다.
돈 후안(돈 조반니의 스페인어 표기) 은 스페인의 세비야를 무대로 전설이 되어 내려온 가공의 인물로서 호색한, 난봉꾼과 동의어가 되고 있습니다. 돈 후안은 17세기 이래 소설, 희곡, 오페라 등에서 즐겨 다루는 제재로서 기본 줄거리는 귀족 돈 후안이 각계 각층의 여성을 농락하다가 최후에는 손님으로 온 석상이 회개하라는 데도 듣지 아니하여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으로 영화 아마데우스에 그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문학에서는 몰리에르의 희곡, 바이런의 서사시 외에도 호프만, 푸쉬킨, 키에르케고르, 쇼, 카뮈에게까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돈 후안을 제재로 한 작품 중 제일이라는 호세 소리야의 희곡 ‘돈 후안 테노리오’가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2004년, 책세상)
오페라 돈 조반니는 로렌조 다 폰타의 대본으로 돈 조반니가 귀족 여성 두 사람과 평민 여성을 상대하는 내용으로 하인 레포렐로가 이탈리아 여자 640명, 독일에서는 231 명, 프랑스 여성은 100명, 터키는 91명, 에스파냐 여자는 벌써 1003명(mille e tre)에 이른다며 주인이 상대한 여성의 수는 물론 신분, 몸매, 연령을 묻지 아니한다고 읊어대는 카탈로그의 아리아 외에도 에로티시즘이 비치는 곡들이 넘쳐나지요. 잡담이지만 어떤 소설에서는 돈 후안이 농락한 여성이 72명이라고 단정한답니다.
또 하나, 프라하에서의 초연시 관중 속에 호색한의 또 다른 대명사인 카사노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카사노바는 실존인물로서 작곡도 할 정도의 음악적 소양이 대단했다고 알려지므로 이 오페라를 본 소감이 있을 텐데 찾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돈 조반니는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과 함께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라고 불리는 데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를 작곡한 호프만은 최고의 오페라(opera of operas)라고 극찬했습니다.
주연 돈 조반니가 테너가 아니고 호색기가 넘치는 바리톤인 점도 이색적이지만 그와 음색이 같은 레포렐로 역과 기품이 넘치는 돈나 안나, 배반에 치를 떨면서도 여전히 집착하는 돈나 엘비라, 결혼할 상대방에 미안해 하면서도 귀족에의 신분 상승을 노려 유혹에 넘어가는 체를리나라는 각기 다른 음색의 세 소프라노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점은 오페라의 본 고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페라의 명작 대부분을 일찍이 녹음으로 남긴 카라얀도 적역을 못 찾아서인지 이 곡만은 녹음을 미루고 미루다 죽기 4년 전인 1985년에야 스튜디오 녹음으로 남겼습니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실황판으로 명연이라는 푸르트뱅글러판을 능가해야겠다는 카라얀의 의도가 엿보이나 개인적으로는 돈 조반니의 배역이 푸르트뱅글러 판의 시에피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줄리니, 클렘페러, 뵘, 마젤, 보닝, 하이팅크, 노링턴의 연주가 음반이나 인터넷으로 나와 있으므로 이들 여러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보아야 카라얀이 고민한 연유를 알게 될 겁니다.
천하의 베토벤이 이 오페라의 진가를 몰랐을 리는 없을 터인데 음악성은 무시하고 카탈로그의 아리아 등만으로 천박하다고 본 것이 아닌가 유감입니다. 베토벤이 서곡을 네 개나 남길 정도로 애착을 보인 피델리오는 여성이 남장을 한 채 옥중의 애인을 결국 구해낸다는 빈약한 스토리에 작품성에 있어서도 돈 조반니에 한참 못 미칩니다. 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준 돈 후안 전설이 음악에서는 모차르트에게만 그치지 않고 20세기에 들어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으로 연결됩니다. 이 작품에는 호색성이 전연 없다고 해설서에 나와 있는데 돈 조반니와 같이 감상하면서 차이를 직접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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