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심리불속행제도가 1994년 9월 1일 시행되었으니 올해로 성년이 되었다. 1981년에 도입된 상고허가제도가 십년도 못가 1990년에 폐지되었던 것에 비춰보면 예상보다 장수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제도든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심리불속행제도도 하나의 제도인지라 시행상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 원론적으로는 무익한 상고를 적절히 여과하여 대법원이 법률심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 상고사건 적체를 심불비율을 높여가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변호사로 활동하며 대법원의 판결을 받는 입장에 있는 나에게 사법개혁 과제를 다섯 가지만 꼽으라면 거기에 심리불속행제도를 넣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에 대한 소송관계자들의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선고기일도 따로 없으니, 언제 심불기각을 당할지 알 수 없어, 상고기록 접수 후 4개월 동안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항소심에서 승소한 사건에서 상대방 상고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면 기뻐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심불기각을 당한 상대방 대리인의 낭패감이 눈에 선하지만, 나도 낭패를 당했다. 상고심 위임계약을 체결했는데, 연말연시가 겹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담당변호사가 바로 소송위임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답변서를 제출할 때 위임장을 함께 제출할 요량이었다. 상고이유서를 받은 후 10일 내에 답변서를 제출할 수 있는데(민사소송법 제428조 제2항), 이는 의무규정이 아니므로 대개 그 기간을 지나고 답변서를 제출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송달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아직 위임장도 답변서도 제출되지 않았지만 항소심에서 대리인이 있었으니 상고심에서도 곧 대리인이 답변서를 낼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만 기다려 주었으면 좋으련만, 대법원이 그 사이를 못 참고 심불기각 판결을 해버린 것이다. 답변서를 정성껏 준비하여 위임장과 함께 제출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경우 상고심에서 승소하고도 성공보수를 받지 못한다. 실무를 하다보면 지키기 어렵지만, 위임계약이 체결되면 위임장부터 제출하고, 답변서는 이왕 내려면 상고이유서를 송달받은 후 10일 내에 제출하여야 한다.
아직 심불기간 내인데 갑자기 선고기일이 잡히는 경우도 난감하다. 상고기각이면 그냥 심불기각을 하면 될 텐데 왜 선고기일을 잡았을까? 그러면 파기환송일까? 선고기일까지 마음을 더 졸일 수밖에 없다.
변호사생활 10년째인데, 2011년에 소가 150억원짜리 사건에서 심불기각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상고심 인지액만 1억7610만원이었다. 2012년 1월 17일 ‘민사소송 등 인지법’ 제14조 제1항 제6호가 신설되어 심불기각의 경우에는 인지액의 1/2을 환급하지만, 당시는 그런 제도도 없었다. 그 판결을 받고 망연자실하여 클라이언트에게 비보를 알려야 하는 변호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인지액이 큰 경우에는 그 사건의 검토와 판결을 위하여 국가가 제공하는 역무의 질과 양을 생각하여 좀 묵혀 두었다가 판결을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배려까지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실 ‘중대한 법령위반’(특례법 제4조 제1항 제5호)이 있어 심불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심불을 해버린 경우에 대한 구제수단은 왜 없는 것일까. 민사소송에서도 인지액의 상한을 둘 수는 없을까. ‘소송목적의 값이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금액(예컨대, 3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로서 제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상반된 때’를 심리속행사유로 추가할 수는 없을까. 국민과 소송관계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심리불속행 기준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심리불속행제도는 과연 지속가능한 제도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조금만 역지사지한다면, 상고이유에 대한 답변서의 첫머리부터 항을 나누어 ‘이 사건 상고이유 주장은 여차저차 하여 심리속행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니 심리불속행 기각을 해달라’고 답변하는 것은, 상대방 상고인 측 입장에서는 얄미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대법관을 지내고 변호사를 하던 박우동 전 대법관은 그의 저서에서 상고답변서 제1항을 심리불속행사유에 해당한다는 매정한 답변으로 시작하지는 말자고 제안하였다. 상대방을 배려하여 상고답변서에서 심불사유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맨 마지막 결론 부분에 간단히만 언급하자고 말이다. 그것이 변호사 간의 기본예의에 속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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