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변호사시대 열어가는 지방회장 자부심 커”

30일 전국지방변호사회장들 대구에 모여 변협 발전 방안, 실질적 전국조직화 논의
대구회는 불우이웃돕기 성금 누적액 9억원에 달해…회원공익 옹호 사업도 박차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한다”믿어…대구는 청정지역, 후배들 위해 지켜나갈 터

대구는 초여름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걸 염두에 두고 옷을 입었는데도 가보니 혼자만 겨울이었다. 따뜻한 대구에서 햇살처럼 환한 미소의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을 만났다.
대한변협이 명실상부한 전국 변호사의 의사와 힘을 모으는 조직이 되려면 14개 지방변호사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기본일 터. 유사직역의 거센 도전, 어려워진 경제상황, 수요를 넘어선 과도한 공급, 법률시장 개방…안팎으로 힘든 변호사들이 기댈 것은 조직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변호사회장들의 맏형으로 전국지방변호사회장들의 모임을 준비 중인 석왕기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사시 29회)을 만나 ‘지방변호사 시대’를 열어가는 각오를 들었다.
“제가 변호사연수회 지방회장단 회의에서 지방회장들이 단합해 좀 제대로 일하고 회장 끝나고도 친목단체로 계속 모임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오는 30일 대구에서 다 모이자고 했습니다.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은 관계로 좌장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만 변협을 움직이는 팔,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고 전국변호사가 소통하고 단합하는 변협을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기존의 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규정은 분기별로 만나 형식적 회의를 하는 수준이어서 전면적으로 손을 보든지 새로 만들든지 하려고요. 30일에 만나 회의도 하고 대구 근대골목투어로 구한말의 자취가 남아있는 이상화, 서상돈 고택, 경상 감영 등을 도는 관광도 할 계획입니다.”
석 회장은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명실상부한 전국조직이 되기 위해 변협도 좀 더 끌어안으려는 노력, 서울을 제외한 지방회 회원의 각종 위원회 참여 독려 방안 연구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석 회장은 전국 변호사들의 화합과 소통의 장이 되는 변협이 되려면 지방회장들의 이해와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대구도 경북 전체를 관할하니 안동, 경주, 포항, 김천, 상주, 영덕, 의성의 회원은 회무 참여율이 낮아요. 많이 고심하고 여러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회원들의 권익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도 중점 연구 중이에요. 사업이사 직도 새로 만들어 권익옹호사업을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정유회사와 협약을 맺고 유류비 할인 또는 포인트제도를 시도해보려고요. 또 대구회는 다행히 변호사회관을 보유하고 있고 마침 아래층 일부가 비어서 청년변호사를 위한 ‘오피스허브’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간이 사무실을 개설해 출발을 도와주는 거죠. 새로 회장에 취임했을 때 저는 기존에 예방 다니던 법원, 검찰에만 간 게 아니에요.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건설협회, 사회복지협의회 등 다 다녔습니다. 갈 때마다 변호사 자문을 구하려면 대구지방변호사회에 언제든 연락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함께 할 사업도 고민하고요.”
집행부 워크숍을 열어 위원회 중 활동이 없는 위원회는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신설할 계획도 세웠다. 고령화 사회 대응을 위한 노인법률지원위원회,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신설을 추진하고 기존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여성 및 외국인노동자 특별위원회’는 취약계층 인권옹호와 권리구제에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권익옹호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대구회가 공익사업에 소홀한 것은 절대 아니다. 대구회는 1998년부터 70여 개인, 법인의 계좌이체를 받아 불우이웃돕기를 해오고 있다. 누적금액이 9억여원에 이른다. 이만큼 지역사회를 위해 모범을 보이니 지역사회단체들이 변호사 권익옹호 이야기를 해도 지지 성원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의욕적으로 회원을 위한 사업을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이 궁금했다. 마치 빚을 진 듯이.
“사실 저는 회장 임기를 시작하며 큰 빚을 졌습니다. 원래 대구회 회장 선거 후보자가 두명이었어요. 등록 열흘이 지나자 제게 오셔서 선거후유증이 염려된다며 사퇴하시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식구처럼 살아가는 지역사회에서 집행부를 구성할 인재풀이 뻔한데 양분되면 회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집행부를 꾸리기도 힘들고 한동안 서먹함이 가시기도 힘들거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잘 해야겠다는 마음,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 다 쏟아부을 겁니다.”
6, 7명의 후보가 격돌하는 서울회 회원들이 들으면 언뜻 이해가 안 갈수도 있겠지만 ‘대구’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대구의 변호사들은 ‘깨끗한 법조’라는 자부심이 남다르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건 브로커가 없는 청정지역이다. 브로커를 쓰지 않으니 수임료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싸다. 그래서 시민들도 그 점을 익히 알고 믿어준다. 대구는 일제시대에도 서울, 평양, 대구 단, 세곳에 복심법원(지금의 고등법원)이 있었던 만큼 오랜 법조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존경받는 선배들이 많다. 누구하나 흙탕물을 일으킬 기세를 보이면 선배들이 따끔히 주의를 주고 그걸 받아들여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되니 해방 이전부터 지켜져 온 전통이다.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청빈한 자세로 먼저 생활의 모범을 보이시니 후배들도 예의를 깍듯이 지키고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는 것.
변호사들이 이렇게 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자존심을 지키니 법원, 검찰도 존중하며 변호사회가 주관하는 신년교례회에는 의례히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일 년에 몇 차례씩 하는 법원, 검찰과의 간담회에서도 형식적 회의가 아니라 현안을 해결해가는 간담회로 이루어진다. 지방변호사회장단 회의에서도 다들 부러워하며 그게 가능한지, 실제로도 그런지를 물어왔다. 인터뷰 하는 내내 자긍심, 긍지가 느껴졌다.
물론 대구의 경제가 많이 어렵다. 사건 수는 줄어드는데 회원 수는 급증하고 있다.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니 기사가 서울에서 온 줄 알고 “대구는 이제 거대한 경로당이 되고 있다”고 지역사정을 설명했다.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빠져나가고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변호사회도 고민이 깊다.
“저는 경북 달성군 옥포 반송리 비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랐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버스도 안 다니는 시골이에요. 제가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전관도 아니고. 연수원 수료 후 대구에서 개업했을 때 누가 제게 사건을 주겠나 싶었어요. 그때 저의 자산이라고는 사람들과의 ‘신뢰관계’뿐이었죠. 제일 먼저 사회단체 28군데에 등록을 했어요. 매일 매일이 모임이었어요. 빠지지 말자, 5분 전에 도착하자, 모든 사람에게 인사하자를 실천했어요. 참 성실하다, 믿을만하다는 평판이 생겼어요. 맡겨주신 사건은 정말 최선을 다했고요. 그러나 보니 기관의 고문, 자문 등도 맡게 되고 사건이 늘어나더군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나름대로 성공한 변호사라고 자부합니다. 청년변호사들에게 시작이 힘들어도 성실하게 매달리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집근처에 조그만 밭을 만들어 각종 채소농사를 짓는다는 석 회장. 아침저녁으로 들러 농사짓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열심히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쌓았고 이제는 회장으로서 후배들을 위해 2년간 열심히 달리겠다는 석 회장. 대구 경북 변호사들, 참 마음 든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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