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법률지식의 절대량을 축적하게 될 터인데, 그 후에는 지식의 축적이 아닌 어떤 점을 갖추어야 더 나은 법조인이 될까에 대한 이야기를 동기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제 동기는 부재승덕(不才勝德), 즉 ‘재주가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아니 된다’ 라는 말을 해주며 종종 일어나는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성추문 사건들은 자신이 지닌 덕보다 분에 넘치는 재주로 인해 생겨나는 일들이 아니더냐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동기들과 술이나 더 자주 마시며 인덕이라도 쌓자는 농담을 건네며 웃으며 이야기를 마쳤습니다만, 이 부재승덕(不才勝德)이란 네 글자는 학점, 변호사시험, 취업 등에 대한 고민으로 시야가 좁아진 저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로스쿨에서는 동고동락하는 친구들끼리 꽤나 치열한 학점 경쟁을 펼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자신의 성적을 위해 선배가 나눠준 중간·기말고사 족보의 내용을 수정하여 잘못된 정보를 동기들에게 배포하는 일도 있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들립니다.
재학 중인 현 단계에서는 법학지식의 축적과 성적만이 그 사람의 전부이고 그를 재단하는 최우선의 척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식으로 3년을 지내다가는 이 상황에 매몰되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이러한 삶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법조인 그 자체가 되고 싶기도 했지만, 더 나은 자연인이 되고자 로스쿨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자문해 봅니다.
더 나은 자연인이라는 거창한 말은 차치하고 졸업 후 괜찮은 사회인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 덕목일까 생각하던 중, 동기들과 그림자배심원 신분으로 강간미수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지켜보며 방청석에서 저희들 대부분은 피고인이 무죄라는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뿐만 아니라 배심원 전원은 피고인이 유죄라 판단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운 세계는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예상 외 결과에 당혹감을 느꼈고, 재판 종결 후 재판장님께서는 여러분의 생각과 재판부 및 배심원의 생각이 왜 다른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봐야 좋은 법조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학생들이 바라보는 ‘갑과 을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행위의 태양, 시간의 선후, 범행 장소 등 기계적인 요소들 이외의 다른 것들이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어느덧 세상을 ‘피고인 갑’ 과 ‘피해자 을’이 사는 곳으로만 여기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돌이켜봅니다. 법조인이 진실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갑과 을이 아닌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필수적인 덕목으로 갖추어야 할텐데 아직 제게는 요원해 보입니다.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라는 추상적인 말을 어떻게 주워 담아 저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재주가 작아 그 재주가 저의 부족한 덕에조차 미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재주가 쌓이게 되면 그 재주를 담아낼 제 덕의 그릇은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해봅니다.
법학지식만이 전부인 현재의 로스쿨생 단계에서 부지불식간 더 시야가 좁아지기 전에 재능이 있는 사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가까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리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 사회, 자연, 예체능 어떤 도구든 상관없이 법학 이외의 영역으로 시야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혜안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재주가 출중해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일찍이 승승장구 하여도 단 한번의 실수로 중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수도 없이 보고 있습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재주는 비슷한 수준에서 수렴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훗날 시간이 지나 범할지도 모를 그 단 한 번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부재승덕 네 글자와 함께 아래의 문구를 되새겨 보려 합니다.
덕승재 위지군자, 재승덕 위지소인(德勝才 謂之君子 ,才勝德 謂之小人)
덕이 재주보다 뛰어난 것을 군자라 이르고 재주가 덕보다 뛰어난 것을 소인이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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