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회만 상영하는 재개봉관에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뒤늦게 봤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파이가 227일간의 끔찍했던 표류여정을 회상하면서 말한다. “삶이란 그런 거죠. 무언가를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 아쉬운 건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거죠.” 마음을 파고들어 아직까지 뇌리를 맴도는 명대사다.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만났다가 기약 없이 헤어지는 것도 그러하지만, 작별인사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죽음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망할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탄에 맞아 사살당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니체는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고흐는 밀밭에서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자살했고, 다이애나비는 파리의 지하차도에서 횡사했다. 독거노인들의 쓸쓸한 고독사도 있다. 그들 모두 죽는 순간 작별인사는커녕 혼자였고, 죽기 전에도 상당기간 홀로였다.
한편 이런 죽음도 있다. 얼마 전 선배 변호사로부터 들었다. 그분이 멘토로 삼았던 지방 향토사학자의 이야기다. 향토사학자는 어느날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병원에서 수술과 항암치료를 권유받지만, 그는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와 잔치를 벌인다. 가족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그동안 인연 맺었던 사람들을 모두 초대한다. 돼지를 잡고 다양한 종류의 술도 제공한다. 노래도 부른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그는 아들을 불러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오게 한다. 나뭇가지를 목까지 집어넣어 먹은 음식물을 모두 게워낸다. 그리고 선언한다. “앞으로 곡기를 끊겠다.” 물만 먹고 40여일을 생존한 그는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다. 작별인사를 잔치로 대신한, 존엄한 자살이랄 수 있겠다.
반면 이런 죽음도 있다. 강영우 박사 이야기다. 그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까지 지냈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자, 그는 자기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진 재산을 다 기부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작별 이메일을 보낸다. 그 이메일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허락받았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둔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말한다. “죽음이라는 게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 일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다음에 더 좋은, 가장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될 거에요. 전 그렇게 믿습니다.” 그 후 그는 죽음을 기꺼이, 즐겁게 맞이했다.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이라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만약 삶이 원주율 파이처럼 끝이 없는 무리수라면 산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까운 시간이, 설레는 만남이, 애절한 이별이, 나누는 사랑이 전혀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아쉽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할 일을 쉽게 내일로 미루고, 먹고 살기 위해 은퇴 없이 계속 노동해야 할 것이다. 썩지 않는 육신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냈다.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것같다.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이 한없이 소중해진다. 아픔을 극복하고 기쁘게 살고자 애쓰게 된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낭비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살다보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닥칠 때가 있다. 낙담하고 좌절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절망의 순간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영화에서 파이가 말했듯이 ‘이미 벌어진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이는 뱅골호랑이와의 표류기와 살아남은 자들과의 표류기, 두 가지 판본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의심은 유용하죠. 믿음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니까.” 결국 중요한 건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영화를 같이 본 아내가 귀가길에 나에게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 떠나기 전에 꼭 작별인사를 하자고. 내가 응답한다. “물론이지. 하나님이 ‘이제 그만 이별놀이 작작하고 어서 빨리 나에게 오렴’ 하실 때까지 충분히 작별인사를 하고, 즐거운 죽음을 맞이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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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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