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흔히 쓰는 블루칩(Blue Chips)이라는 말은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는 우량기업의 주식을 말한다. 이는 본래 포커에서 쓰이는 칩 가운데 가장 단위가 큰 것이 푸른색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미술시장에도 이른바 블루칩 작가들이 있다. 주식시장에서 블루칩이 경기변동에 강하고 신용과 지명도가 높아 투자가 유망한 우량주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미술시장에서의 블루칩 작가 역시 작가의 역량을 담보할 수 있는 이력과 꾸준한 시장 수요가 뒷받침되는 인기 있는 작가들을 의미한다. 주식시장에서의 블루칩이 대형제조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미술시장에서의 블루칩 역시 대형 화랑들과 관계 있는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식에서도 어떤 주식이 뜨는 것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듯이 미술시장에서의 블루칩 작가들 역시 일정한 유행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특정한 장르, 혹은 소재 등은 블루칩 작가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미술시장에서는 극사실주의 계통의 그림들이 대 유행하였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작품들은 일반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 테크닉의 탁월함은 감탄을 자아냈다. 대부분이 젊은 작가들이었던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단연 미술시장의 블루칩으로 부각되며 미술시장을 견인했다.
이후 대중들의 호응에 힘입어 특정한 소재, 예를 들면 꽃이나 과일 등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나칠 정도로 유사한 소재와 표현이 범람하자 급기야 우리 미술시장이 ‘꽃시장인가, 아니면 과일가게인가?’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때 블루칩 작가들의 위세는 대단하여 ‘완전 매진’ 이른바 ‘sold out’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전시가 개막되기도 전에, 혹은 개막되자마자 완전 매진을 기록했다는 소식들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미술시장의 활황에 따른 작가의 인기도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즉 일종의 작전세력 같이 불순한 집단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나 평가를 조작된 ‘sold out’이라는 행위를 통해 오도하여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나치게 뜨겁거나 요란하다면 그 자체를 의심해 보는 것이 안전한 투자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
유행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고 만다. 어제의 블루칩이 오늘에도 블루칩이 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시장의 기호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미술시장이 호황이었을 때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던 작가들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적잖은 이들이 이미 관심의 저편으로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서도 ‘미술계의 블루칩’이라는 선정적 기사가 사라진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다. 2012년의 미술시장을 분석한 가격동향에서도 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호가의 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품은 한 작가의 삶이 오롯이 농축되어 숙성됨으로써 그 빛과 향기를 더하게 마련이다. 블루칩 작가로 포장된 이들이 대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 중반의 청년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이들의 작품들이 아직은 성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블루칩 작가를 넘어 이제 갓 미술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원을 마친 이들의 작품에까지 선뜻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 있다. 만약 이들을 통해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투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장래가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여 투자를 함으로써 작가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자산의 증식에도 보탬이 된다면 더 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술시장, 특히 투자를 염두에 둔다면 푸른색과 녹색은 결코 같은 색이 될 수 없다. 설익은 과일은 비록 모양은 갖추었겠지만 본연의 깊은 맛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공연한 기대로 이를 탐하다가는 필연적으로 심한 복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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