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지원으로 온 판사가 임신 8개월이래.” “대박! 판사 고생하겠네. 어쩌냐….” 출산율 저하로 고민하는 나라지만 그 내부 곳곳은 이런 수군거림으로 가득하다.
판사가 10명이 안 되는 지원에서 여자 판사의 출산 휴가는 폭탄이다. 출산 휴가가 3개월 정도이다 보니 대체 인력이 투입되지도 않는다. 결국 남은 판사들이 그 충격을 감당해야 한다. 작년에는 지방법원에서 여판사의 출산 휴가로 법원장님이 직접 재판을 진행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법원장님의 대범함을 칭송하고자 하는 기사였겠지만 난 그 여판사의 고민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했을까.
지방법원에서는 재판을 하지 않는 법원장님이라도 있지만 지원의 경우 평소에 지원장님도 재판을 하시기에 달리 대체 인력이 없다.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판사들이 오롯이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한다. 아줌마 법조인들이 모이면 주로 육아 문제로 수다를 떤다. 아이는 몇 명인지, 몇 살인지, 어디에 있는지, 누가 돌봐주는지, 육아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육아도우미를 어떻게 구했는지, 육아도우미는 마음에 드는지 등등.
작년에 온 동기 여판사는 아이와 친정어머니가 같이 내려왔다고 한다. 육아 도우미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꾸 그만두려고 하는데 월급을 올려달라는 뜻인지 정말 그만두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들은 바로는 이 지역에서 통상 지급하는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었는데, 차마 그 얘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한 여자 변호사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데 아이가 너무 내성적이라서 도우미를 교체하는 게 어려워져서 이제는 도우미에게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단다. 그분이 집에 있는 반찬이나 쌀을 몰래 가져가는 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와의 관계가 너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 도우미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너무 잘해준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참기로 했단다.
내 친구는 친정어머니와 같이 산다. 그나마 복 받은 경우다. 아버지가 안 계시고 어머니가 아직은 아이를 돌봐주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시다니 더할 나위 없는 경우다. 나는 아이를 너무 늦게 낳은 데다 시부모님도 건강이 좋지 않고, 친정어머니는 본인의 몸도 스스로 챙기지 못할 만큼 건강이 좋지 못하다. 시부모님은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사시는데도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첫째는 14개월 때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을 다녀야 했다. 내가 연수원을 다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둘째는 사정이 나았다. 내가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도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는 있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육아휴직이란 게 없고 그냥 무급으로 쉬어야 한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나는 계획(?) 출산을 했다. 처음에는 2주만 쉴 생각이었는데 부장님이 그렇게 무리하면 안 된다며 3주는 쉬라고 하셔서 3주를 쉬기로 했다. 그리고 그 3주를 두 달에 나누었다. 출산 이틀 전까지 재판을 했다. 그리고 출산 후 2주가 조금 넘은 때에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나보다 한 달 늦게 출산한 내 친구는 무급으로 2달을 쉬었다. 부러웠다. 하지만 사람마다 형편이 다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지금 둘째를 봐주시는 분은 출산 이후 보름째부터 일을 하셨다. 너무 좋은 분이라 후유증도 있었다. 아이가 백일 정도가 되어 낯을 가리기 시작했을 때 저녁에 아주머니가 돌아가면 울었다. 그 울음을 진정시키려고 아이를 업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그 울음은 몇 달간 계속되었고 우리 아이에게 엄마는 그 시간 동안 낯선 사람이었다.
올해 새로 임관하는 여자 검사의 수가 남자 검사의 두배라고 한다. 그분들 중 대부분은 사법시험 준비와 연수원 공부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고 있었을 것이고 조만간 결혼과 출산을 할 것이다. 2~3년마다 부임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여자 판검사들의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충은 아마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본인으로 인해 업무가 과중해지는 주변 동료들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올해부터 집에서 육아를 하면 10~15만원 정도 보조를 해준다고 한다. 나도 대상자이다. 준다고 하니 신청은 했지만 좀 난감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 때문에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나의 출산과 육아가 왜 타인에게 부담이 되어야만 하는지 정말 난감할 뿐이다. 받기에도 민망한 육아보조금은 우리 둘째 봐주시는 분에게 선물로 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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