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친구 지현에게,
며칠 전 너와 긴 통화를 하고 나서 너에게 했던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지나치게 일반적인 내용만 이야기한 나머지, 너의 고민을 그저 누구나 하는 진로선택 문제 정도로 폄하한 것은 아닌지. 너도 이제야 모든 기나긴 힘든 공부를 마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잖아. 그런데 그 힘든 과정만 거치면 잘 될 거라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긴 시간 견뎌왔는데,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고 고민은 계속되고 너무 괴롭다고 하는 너에게 내가 고민 끝에 해 준 말은 ‘인생은 끊임없는 수업이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들어간 것이니 수업은 하루 24시간, 살아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되는 것’이 전부였어.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한 마디를 통화가 다 끝날 때까지 하지 못했어. 너무 힘들다는 너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 그런데 문득 그저 희망을 가지라는 가벼운 말에 그치지 않고, 삶 그 자체로 온몸으로 희망을 보여 준 책을 통해서라면, 감히 ‘희망’을 가져보자는 말을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신영복 씨가 쓴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2010)’이라는 책을 선물하고 싶어. 작고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거야.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시대적 단면을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야. 그렇지만 20년을 꼬박 감옥에서 갇혀 보내면서도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기에, 지인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통해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담아내셨다고 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2001)’ 등 여러 저작과 강연을 통해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분이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저자가 일간 신문을 통해 연재하던 여행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어. 당시엔 그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이 잘 어울린다고만 생각했어.
이 책에서 저자는 ‘슬픔’이 어떻게 ‘기쁨’으로 전환되는지를 말하고 있어. 쇼펜하우어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예로 들어서. 너도 잘 알다시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가 자살에 이르게 되는, 처절한 사랑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잖아. 그러나 그것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란 슬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더구나 사랑의 70%가 짝사랑이며, 짝사랑은 더욱 괴로운 것임을 말이야.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깨달음을 공유할 때 철학으로 승화한다는 사실이라고 해. 실제로도 수많은 독자들이 베르테르의 슬픔을 공유했고, 나폴레옹도 아홉번 읽었다고. 결국 개개인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곧 ‘슬픔’은 놀랍게도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이 비록 눈물 젖은 기쁨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깨달음이 철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깨달음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어. 슬픔을 통해 기쁨을 깨닫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면 비로소 지식으로, 철학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처럼 공유가 이루어지려면, 저자는 우리 스스로 개인 단위로 사고하는 틀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어깨동무로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낙락장송이나 명목이 나무의 최고 형태가 아니라 나무의 완성은 숲이고 개인의 경우도 사람들의 관계 속에 설 때 비로소 개인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셔.
무엇보다 저자의 이 모든 이야기들은 그저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20년의 감옥 생활을 하면서, 얼핏 보기엔 자신과 너무 다르게만 보이던 죄수들을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자기성찰을 해 온 그의 삶 자체에서 나온 것이기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믿어져서 더욱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아.
너도 나도 각자 고민을 껴안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외로운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 그런데 그 외로움을 꿋꿋이 딛고 일단 일어나면 너와 난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한참 이야기하다보면 어디쯤에선가 ‘원래 사는 게 그런 거구나’ 이런 결론에 잠시 도달하고는, 그래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다는 느낌도 잠시 나누다가, 그래서 또 잘 헤쳐 나가고 싶은 용기가 난다고 말하게 되잖아. 너와 나 사이의 관계에 한정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용기를 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곳에 ‘희망’이 있다고 하잖아. ‘여럿이 함께’는 방법만 있고 목표 지향성이 없다는 어느 후배의 비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대.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라고. 목표나 성과도 중요하지만, 걸어가는 길 그 자체도 삶에선 중요하다고. 너와 나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길 그 자체의 의미를 잊지 않도록 서로 도와주면서 나아가면 좋겠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럼 이만 쓸게.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길!사랑을 가득 담아, 은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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