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다8709 판결

Ⅰ. 사실관계
원심공동피고 주식회사 N(이하 ‘N’라고 한다)은 2001년 후반기부터 서울 소재의 토지(이하 ‘이 사건 사업부지’라고 한다)에 24평형 등 아파트 512세대를 건립하는 아파트개발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이라고 한다)을 계획하고 이 사건 사업부지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주택조합을 설립한 후 그 지역주택조합으로부터 시행대행자로 선정받는 방안을 구상하였다. 소외인은 2001년 말경부터 ‘가칭 S 지역주택조합’의 조합규약을 마련하고 시공사를 물색하는 등의 준비를 하여 오던 중 2003년 4월 30일 S 지역주택조합 명의로 N과 위 조합을 이 사건 사업의 시행자로 하고 N을 그 시행대행자로 하는 시행대행계약을 체결하였다. 한편 Y구청장은 2003년 7월경 서울특별시에 이 사건 사업부지를 뉴타운사업지구지정을 신청하였고, 이에 서울특별시는 2005년 8월 20일 이 사건 사업부지를 뉴타운사업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 사업부지 일대는 2004년 6월 25일 서울특별시 고시 제2004-204호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상 주택재개발예정구역으로 고시되었고, Y구청장은 2005년 8월 26일 X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추진위원회의 설립을 승인하였다. 한편 N은 이 사건 사업의 시행대행사로서 2004년 6월 22일부터 2005년 12월 20일까지 원고들과 이 사건 조합원가입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계약 체결 당시 이미 이 사건 사업부지 일대가 뉴타운사업지구로 지정되어 지역주택조합 방식에 의한 이 사건 사업의 추진이 불가능할 수 있었음에도 N은 원고들에게 그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그 후 뉴타운사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구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 사건 사업부지는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사업의 종류는 주택재개발사업으로 각 지정됨으로써 지역주택조합 방식에 의한 아파트건설사업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자 원고들은 N 등을 상대로, ‘피고들은 시행대행사, 시공사로서 원고들에 대한 관계에서 관련 법령을 면밀히 검토하여 이 사건 사업이 가능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추진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한다 할 것인데 당시 이 사건 사업부지가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지도 않아 이 사건 사업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이 사건 사업이 가능하다고 과신하여 원고들과 조합원가입계약을 체결하고 조합원 분담금을 납부하게 하였으므로,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Ⅱ. 소송의 경과
1. 원심판결
위 인정사실(생략)을 종합하면, 피고 N은원고들과 이 사건 조합원가입계약 체결 당시에 이미 이 사건 사업부지 내 건축물이 서울시의 단독주택 등 저층주택지 관리방안 또는 서울시 도시계획조례가 규정한 건물노후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고, 뉴타운개발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지역주택조합방식으로는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이 사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결국 이 사건 조합원가입계약 내용대로 원고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추인된다. 그럼에도 피고 N은 단지 입법청원이나 행정소송의 방법으로 이 사건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면서 조합원가입계약을 체결하고자 교섭하였던 원고들에게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이 사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였는바, 이 사건 사업부지에서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아파트 건설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한 지 여부는 원고들이 이 사건 조합원가입계약의 체결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사항이라고 할 것임에도 피고(N)가 위와 같이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사업추진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뉴타운개발지구로 지정되면 이 사건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불투명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고지하지 아니한 것은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라고 볼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 N 등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각자 원고들에게 그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2. 대상판결
고지의무를 위반한 당사자가 부주의 또는 착오 등으로 고지의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 위법성이 부정되는지 여부(소극)
(1) 부작위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작위의무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작위의무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이상 의무자가 의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불법행위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이는 고지의무 위반에 의하여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므로 당사자의 부주의 또는 착오 등으로 고지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위법성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지역주택조합 방식에 의한 아파트개발사업의 시행대행자인 갑 주식회사(이 사건의 공동피고인 N)가 을 등(이 사건의 원고들)과 조합원가입계약을 체결할 당시 이미 사업부지 일대가 뉴타운사업지구로 지정되어 위 방식에 의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았고, 그 후 실제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게 되어 을 등이 손해를 입은 경우에 사업 추진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사정은 조합원가입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데 관건이 되는 중요사항이므로 갑 회사가 계약상대방인 을 등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고, 갑 회사가 계약 체결 당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여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Ⅲ. 평석
1. 검토
계약체결 여부에 관건이 되는 중요사항의 고지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착오 등의 사유로 그 고지의무(작위의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여 계약의 상대방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 위법성이 인정되어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가 의문이다.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위법성이란 어떤 행위가 법질서 전체의 입장에서 허용되지 않아 부정적 판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행위가 위법성을 띤다고 할 경우, 그 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통설은 실정법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도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인정한다. 위법성의 판단대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통설은 판단대상을 객관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사람의 주관적인 의식에 기한 것 뿐만 아니라, 의식에 기하지 않은 용태나 자연현상도 그 대상에 포함시킨다(위법성의 판단대상으로서의 행위위법론과 결과위법론은, 대상판결을 평석함에 있어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할 것이어서, 생략하기로 한다).
판례는 불법행위 성립요건으로서의 위법성은 관련 행위 전체를 일체로만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취한다(대판 2003. 6. 27. 2001다734). 부작위의 경우는 어떤가? 판례는 작위의무의 존재를 전제로 작위의무를 위반하여 그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에 한하여 위법성이 인정된다는 견해를 취한다. 즉, “채권자의 부작위가 제3자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하려면 그 부작위가 위법하여야 하므로 그 전제로서 채권자는 제3자에 대하여 작위의무를 지고 있어야 하는바, 일반적으로 채권자가 자신의 채무자에 대하여 상계권을 행사하고 아니하고는 채권자의 권리일 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상계를 하여야 할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채권자가 상계권을 행사하지 아니한 것이 제3자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다(대판 2002. 2. 26. 2001다74353).”
또한, “당좌예금 은행이 거래고객의 예금부족에도 불구하고 당좌수표의 부도처리에 이은 당좌예금계정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미사용 당좌수표용지를 회수하지 아니하여 거래고객의 상대방인 제3자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은행의 그와 같은 부작위가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가 되려면 그것이 위법한 것임을 요하므로 그 전제로서 제3자에 대하여 그와 같은 행위(작위)의무를 지고 있어야 할 것인데 일반적으로 은행이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자기 방어의 필요에서 취하고 있는 조치이지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법적의무라고는 볼 수 없고, 후략(後略)(대판 1989. 6. 27. 88다카9524).”
통지(공고)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이를 통지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즉, “징발재산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부칙(1993. 12. 27.) 제2조 제3항 및 같은 법 제20조 제2항이 환매권 행사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의 통지 또는 공고의무를 규정한 이상 국방부장관이 위 규정에 따라 환매권자에게 통지나 공고를 하여야 할 의무는 법적인 의무이므로, 국방부장관이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채 통지 또는 공고를 하지 아니하거나 통지 또는 공고를 하더라도 그 통지 또는 공고가 부적법하여 환매권자로 하여금 환매권 행사기간을 넘기게 하여 환매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게 하였다면 환매권자에 대하여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대판 2006. 11. 23. 2006다35124).”
고지의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떤가? 판례는 고지의무가 없는 경우,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즉, “일반적으로 매매거래에 있어서 매수인은 목적물을 염가로 구입할 것을 희망하고 매도인은 목적물을 고가로 처분하기를 희망하는 이해상반의 지위에 있으며, 각자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최대한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당사자 일방이 알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고지하여야 할 신의칙상의 주의의무가 인정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이 목적물의 시가를 묵비하여 매수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시가보다 높은 가액을 시가라고 고지하였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결정에 불법적인 간섭을 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는바, 주식과 같은 투기성 있는 객체의 거래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대판 2006. 11. 23. 2004다62955).”
2. 대상판결의 의의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작위의무(고지의무)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함은 이미 살핀 바와 같다. 그런데 부작위의 위법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고지의무의 존재를 인식한 경우여야만 하는가? 생각건대 피고(N)에게 고지의무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한, 의무자(N)가 이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그 위법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 나아가 계약체결 당시에 원고들의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 사건 사업의 추진 불가능성)을 N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대상판결의 태도는 객관적 위법론의 견지에 비춰볼 때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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