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멀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피해자의 권리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를 배려하는 절차의 발전과 규정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그런데, 2013년 3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게 기본권을 침해받고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피해자가 있다. 바로 ‘절름발이 헌재’ 때문에 재판받을 기본권 자체를 무시당하고 있는 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1조 제2항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고, 제3항에서는 ‘제2항의 재판관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제4항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헌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대통령이 직무유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헌재는 2013년 1월 21일 이강국 전 소장의 사퇴 이후 40여일 넘게 송두환 재판관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헌재의 변칙적 운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 8월 전효숙 전 재판관이 헌재소장으로 지명됐다가 낙마했을 때와 2012년 1월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민주당 추천)가 국회 동의를 받지 못했을 때도 헌재는 장기간 비정상적으로 운용되어 왔다. 더군다나 작년 8월에는 임기가 만료된 헌법재판관 5명의 후임이 임명되지 못하여 한달 동안 헌재 기능이 정지된 바 있다.
하지만, 올 초부터 헌재에는 또 다시 소장이 존재하지 않고 있고 더구나 3월 21일 송두환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면 7인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게 됐다. 현행 헌법상 7인이 출석하면 평의와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할 것인가?
헌법에서 헌재를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그 임명과 관련하여 국회, 대법원, 정부(대통령)가 3분하여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 것은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 권한쟁의 심판, 탄핵, 정당해산 등과 관련된 중대 결정을 내리는 최종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헌법은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릴 때에는 6/9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하여 그 결정에 신중을 기하되 국민 일반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전제하였다. 그런데 현재, 위헌 결정에 필요한 찬성 요건이 사실상 6/8 으로 강화되었고, 그도 모자라 이제 7인 체제 하에서는 6/7로 변형될 위기를 맞게 되었다. 공개변론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고 사실상 위헌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헌재의 이와 같은 변칙적 운용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와 정부의 헌법기관에 대한 모독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와서 헌재소장이 임명되고 재판관이 임명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제도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문제는 계속해서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의 행태를 보면 전혀 기우가 아니다. 청문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후보의 지명,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해지는 국회의 고무줄 청문회, 신속한 후속조치 결여라는 3박자가 결국 작금의 헌재 사태를 만들어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조 제3항에서는,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하는 경우에는 임기만료일 또는 정년 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제4항에서는 ‘임기 중 재판관이 결원된 경우에는 결원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문제는 위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고 국회나 정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국회나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탄하고 성명서를 내도 소용이 없다. 보다 직접적인 강제 방법이 필요하다.
법에 규정되어 있는 자신들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책임추궁을 위해 국민소환제를 채택하고 벌금이라도 물리는 건 어떨까? 엄청난 월급을 받으면서도 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속상해하면서 월급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요구하면 어떨까? 말해놓고 보니 너무 우습지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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