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안의 경과
가. 피고인은 A와 합동하여 피해자가 청소년과 성관계하기로 한 사실을 기화로 피해자를 폭행하고 욕설을 하여 반항을 억압한 다음 금목걸이를 건네 받아 강취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전치 4주간의 상해를 가하고, A에게 “만약 경찰에 잡히게 되면 내 이름을 김훈이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여 범인도피를 교사하였다고 기소되었다.

나. 제1심은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공판절차를 진행하였는 바, 배심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A와 피해자의 증언을 참고하여 증거의 취사와 사실인정에 대한 평의를 거친 끝에 만장일치 의견으로 무죄평결을 하였으며 재판부도 이를 그대로 채택하여 무죄로 판결하였다. 그 요지는 피고인의 강취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목걸이를 건네 받을 당시 불법영득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며 범인도피의 점에 대하여 A의 진술이 중요부분에서 신뢰성이 떨어져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없이 진실한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고 하면서 다만 강도상해와 동일한 공소사실 범위 내에 있는 상해죄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다. 항소심은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증언을 들은 다음 이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단계부터 원심 및 항소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모순되는 부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으며,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진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발견되지 않고 또 피고인의 행위가 강도상해로 인정되는 경우와 상해로 인정되는 경우의 차이를 인식하면서 피고인이 돈을 요구하여 목걸이를 빼앗아 갔다는 부분을 꾸며내었으리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 강도상해는 물론 범인도피교사도 유죄로 판단하였다.

라. 피고인은 항소심의 판결에 대하여 전부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범인도피교사에 대하여는 직권으로 “수사기관은 수사를 진행함에 있어 피의자나 참고인의 진술 여하에 불구하고 피의자를 확정하고 피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여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므로 참고인이 범인에 대한 조사를 받을 때 아는 사실을 묵비하거나 허위 진술하였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기만하여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범인의 발견 또는 체포를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닌 한 범인도피죄가 구성되지 않는다”며 범인도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 교사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였고 강도상해에 대하여는 아래 판결요지의 판단을 하였다.

2. 판결요지
가. 제1심 증인의 진술에 대한 제1심과 항소심의 신빙성 평가 방법의 차이에, 우리 형사소송법이 채택하고 있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취지 및 정신을 함께 고려해 보면, 제1심 판결 내용과 제1심에서 적법하게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들에 비추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대한 제1심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제1심의 증거조사 결과와 항소심 변론종결시까지 추가로 이루어진 증거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대한 제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항소심으로서는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대한 제1심의 판단이 항소심의 판단과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제1심의 판단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아니된다. 특히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증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제1심의 판단을 뒤집는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 및 형사증명책임의 원칙에 비추어 이를 수긍할 수 없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는 경우라야 한다.

나.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된 형사공판절차에서, 엄격한 선정절차를 거쳐 양식 있는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사실의 인정에 관하여 재판부에 제시하는 집단적 의견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공판중심주의하에서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에 관한 전권을 가지는 사실심 법관의 판단을 돕기 위한 권고적 효력을 가지는 것인바,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 후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등 증거의 취사와 사실의 인정에 관하여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내린 무죄의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하여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이러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증거의 취사 및 사실의 인정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와 정신에 비추어 항소심에서의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층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

3. 검토
가. 국민참여재판 운영상 문제점
형사재판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제도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써 특히 사법의 신뢰회복이라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기본적으로 배심원들의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둔 판단이 직업법관의 판단보다 더 현명하고 안정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6조는 형사소송절차에 있어서 피고인은 범죄가 발생한 주나 지역의 공정한 배심에 의한 신속하고 공개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배심원은 12명이 원칙이지만 6명을 규정한 플로리다 주법률을 합헌으로 보고 있다. 또한 전원일치 평결이 원칙이지만 연방대법원은 10대 2 내지 9대 3의 유죄평결도 합헌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하여는 전원일치의 평결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배심원의 평결이 법관의 생각과 다른 경우에도 법관은 배심원의 평결을 거부할 수 없으며 어떤 이유로 어떠한 증거를 근거로 그러한 평결을 하였는지 물어볼 수 없다. 피고인이 무죄평결을 받으면 소추절차에서 해방되며 유죄평결을 받게 되면 법관은 바로 양형재판을 거쳐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배심재판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설사 배심원 전원일치로 무죄평결이 있고 재판부도 이를 수용하여 무죄판결한 경우라 하더라도 피고인은 다시 항소심에 넘어가 법관에 의한 유죄판결이 가능한 상황이어서(실제 국민참여재판 절차로 진행된 인천지방법원 2008고합46호 상해치사, 사기사건에서 상해치사의 점은 무죄로, 사기죄에 대하여는 징역6월이 선고되었으나 서울고등법원 2008노946호 항소심에서는 상해치사도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2년이 선고되었다. 이 판결은 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8도6472 판결 선고로 확정되었다.) 아무리 시행초기의 배심재판이라 하더라도 배심제도의 근간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 판결에 대한 평가
이 판결 중 가항의 판결요지는 상당히 많은 판례에서 집적되어 왔다. 즉 형사사건 실체에 관한 유무죄의 심증형성은 법정의 심리에 의하여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의 한 요소로서 법관의 면전에서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을 수 있고 증명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원본 증거를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하며 원본 증거의 대체물 사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항소심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에 대하여는 진술의 신빙성 유무 판단에 있어 주요 요소인 증인의 진술당시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을 반영할 수 없다는 본질적 한계가 있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대한 제1심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이를 함부로 뒤집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루어진 배심원의 판단에 적용해보면 어떤 결과가 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 데 이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이 바로 나항의 판결요지인 것이다. 즉 양식있는 배심원들이 공판 전 과정에 참여하고 증인의 진술을 경청한 후 사실의 인정에 관하여 전원일치의 평결을 하였고 이 결론이 재판부의 심증에도 부합하여 채택된 경우라면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하여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다.
판결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배심재판에 있어서 배심원의 평결에 권고적 효력이 아닌 기속력을 부여하고 배심재판을 거쳐 무죄평결을 받은 피고인에 대하여는 소추절차에서 해방시키는 미국식의 배심제도를 채택한다면 모두 해결될 일을 이러한 배심제도의 알맹이는 빼 버린 채 공판중심주의 등 이론을 총동원하는 대법원의 노고가 눈물겹게 여겨진다. 최근에 국민사법참여위원회에서는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사실상 인정하는 방식으로 결정하여 법률개정도 뒤따를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평결 방식에 관하여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되 배심원의 4분의 3 이상이 찬성할 경우에만 기속력을 갖도록 결정하였다고 한다.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되지만 근본적으로는 헌법상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명문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여야만 배심제도가 법체계에 맞는 제도로서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