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연수원 동기들을 만나면 늘 반갑고 즐겁다. 사법연수원 시절은 사람마다 사연은 달랐으나 짧았든 길었든 고시라는 어둡고 험난한 터널을 함께 통과했다는 동질감과 안도감, 그리고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평생 걸어간다는 끈끈한 동료의식으로 다들 하나같이 친하게 지내면서 씩씩하고 힘차게 보낸 2년이었다. 돌아보면 철없던 시절 같아 후회되는 점도 많지만, 참 잘도 뭉쳐 몰려다니면서 놀고 공부하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활기를 변호사 생활에서 다시 찾기란 어려워진 시절이 온 것 같다. 변호사로서의 삶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법조인으로서의 삶 말고 다른 가능성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도 변호사로서의 삶이 생각보다 긴장되고 바쁜 생활의 연속에다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변호사계의 팍팍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법조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각들을 접하게 되면 힘이 풀리기도 하고 이 일이 더 재미없어지는 경험은 아마 대부분의 법조인들이 겪은 일일 것이다.
당연히 언제부터인가 일 자체에 대한 대화들은 밝고 재밌는 이야기보다는 우울하고 캄캄한 주제들로 가득 차 있고, 동기들 모임에서도 그 시절의 열정과 활기를 다시 찾기는 어려워 조용하게 밥 먹고 이야기 하다 헤어지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10년 만에 만난 동기변호사에게 그 시절의 활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젊은 변호사의 고백’이라는 책을 출간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상근간사 김남희 변호사를 통해서였다.
그의 책에 소개된 김 변호사는 ‘서울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형 로펌에서 억대 연봉의 변호사를 거쳐 이른바 대한민국 1% 엄친딸의 표본 중 표본이었다가 해외유학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깨닫고 180도로 돌변, 변해도 너무 심하게 변해 귀국 후 시민단체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그날도 아주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하다가 겨우 왔다고 했지만, 피곤한 기색없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책에서 그동안 법조계 내부자로서 느껴왔던 모순과 부조리들, 법조인들은 어떻게 최고 권력을 위해서 일하는지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데,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사실 지극히 평범한 보통변호사인 나는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점들을 법조계라는 이 생태계의 ‘불편한 진실’ 정도로 받아들이면서 순응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룸살롱 문화와 성접대 문화를 옆에서 보게 되었던 사법연수원 시절의 일을 찜찜한 기억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사건이 몰려드는 법원, 검찰 출신의 변호사들은 전관예우를 받아서 참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유명 대형 로펌의 터무니없는 변호사 수임료를 듣고는 폭리라며 비판하지만 괜히 일하기 싫어지기도 하고, 변호사로서 엄청난 수입을 얻었던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이 다시 정부 요직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건 너무 심하다며 혀를 차긴 했지만 딱 그 정도로 그쳐왔었다.
그녀는 드라마 ‘추적자’나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을 보고 수많은 시민들은 공감하고 분노하며 우리 현실을 제대로그려냈다고 느끼는 반면, 법조인들은 좀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인식의 괴리에 대해 공론화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동기로서 너무 자랑스러웠고 변호사생활 10년 만에 시민단체에서 다시 찾은 활기가 나에게도 전염되는 것 같아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좋은 며칠을 보냈다. 앞으로 그녀의 재미있어 죽겠다는 그 일들이 잘 풀려 법조계에 박힌 나쁜 가시 하나 정도는 너끈히 빼내는 역할을 그녀가 잘 해 주길 바란다.
아울러 그녀가 책에서 적고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정의와 형평의 문제를 영화와 드라마 속에만 가두어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 속으로 이끌어내어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성찰하며 건강한 법조계로 거듭나서 모두가 경험하였던 사법연수원 그 시절의 활기를 되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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