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내 적정 수면 시간은 10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정확하게 9시간이며,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낮잠을 30분 정도 자야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휴일이라고 몰아서 자는 법도 없고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줄여서 자는 법도 없이 한결같다.
나 스스로는 이 정도의 수면시간이 딱히 남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요즘도 그렇게 자느냐는 말로 인사를 시작하고, 친정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내게 “넌 자다가 망할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으니 남들보다 많이 자는 편이기는 한가보다.
하지만 난 굴하지 않는다. 잠을 안 자고 흥하느니 자다가 망하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 결코 굽힐 수 없는 내 신조다.
나도 잠을 줄여보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절대적인 공부량이 필요했던 학창시절이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기간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게으른 사람, 성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했는데 아무리 참으려 해도 10시 30분이 넘으면 잠이 쏟아졌고, 졸다가 들켜 남학생들 앞에서 벌을 서거나 매를 맞을 때에는 이토록 잠이 많은 내가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던 나흘동안, 잘만큼 자고도 시험 중간에 자꾸 잠이 쏟아질 때는 이러고도 내가 고시생인가 싶어 죄책감도 들었다.
연수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의실 책상 위에서 한참을 엎드려 자고 난 후에는 책상위에 몇 통의 쪽지가 올라와 있곤 했는데, 나를 흠모하는 남자 연수생의 고백인가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보면 “그렇게 잘 거면 집에 가서 자라. 보는 나도 졸리다” 등등의 책망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변명하건대, 잠이 많다고 해서 게으른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잠이 많지만 그 많은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낮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산다. 분,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고 여차하면 식사도 거른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어떻게든 잠 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독서실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공부했으며, 양말 벗는 시간이나 세수하는 시간도 아까워, 집에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양말을 미리 벗어놓은 다음 들어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세안제로 얼굴을 문질러 가면서 책을 봤다. 맞벌이 부부인 지금은, 비록 남들보다 늦게 일어날지언정 놀라운 스피드로 아침식사 준비는 물론 설거지까지 하고 출근한다. 일하고 살림하고, 매일같이 야구 중계를 보며, 경기를 분석해서 칼럼까지 연재하는 건 부지런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잠이 많다고 게으른 사람 취급이라니. 진심으로 억울하다. 밤새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TV 시청을 하는 사람에 비해 내가 훨씬 부지런하고 열정적이지 않은가!
‘아침형 인간’이니, ‘4當5落’이니 하며 ‘빨리빨리’ ‘부지런히’를 외쳐온 사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인으로 하여금 불면을 권한다. 하지만 어느 저명한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수면 시간을 줄이는 것은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 쓰는 것과 같아, 당장 쓰는 재미는 쏠쏠할지라도 결국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감당하기 어렵듯 건강을 해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은 건강과 부의 상징이지, 게으름이나 의지부족의 대명사가 아니다. 비록 일생에 3분의 1도 넘는 시간을 잠으로 허비한다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어쩌랴. 내 생애의 그 3분의 1이 나는 가장 행복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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