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의에는 ‘유행을 타지 아니하는’ ‘시류와는 거리가 있는’ 또는 ‘인기가 없는’ 등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회화의 예를 보면 인상파가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아니한 때가 있었고 고흐의 전시회는 잊을만하면 나와서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클림트가 대유행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도 유행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어떤 풍조나 시대의 작품이나 특정 작곡가의 곡이 어느 한때를 휩쓰는 예가 종종 있어 왔습니다.
전자의 예는 바로크 음악입니다. 음악 용어는 이탈리아어가 대세인데도 baroque라고 프랑스어를 쓰는 이유는 17세기 초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회화 조각 건축 연극에서부터 음악에 이르는 예술 전반에서 유럽을 지배한 사조 또는 풍조의 중심이 프랑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이전의 과도한 장식(건축이 좋은 예가 됨)을 비판하는 데 유래가 있다고 하는데 정의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속도나 강약의 대비가 비교적 뚜렷하나 가장 특이한 점은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 가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데 있습니다. 바소 콘티누오는 일본의 번역을 답습하여 통주(通奏)저음이라고 부르나 지속(持續)저음이 맞는 번역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주된 선율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쳄발로 등 저음악기를 가지고 화성을 넣는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데 요즘의 코드와 같습니다. 바로크 음악은 적은 수의 악기를 가지고 강약이 뚜렷한 표현을 내면서 쉽게 듣도록 만드는데 그리 간단치 아니한 데 매력이 있습니다. 별로 길지 않은 협주곡이나 성악곡에 명곡이 많으며 카스트라토가 나오는 바로크 오페라는 별로입니다만 여운이 길게 가는 몇몇 미사곡은 정말 좋습니다. 20여년 전부터 바로크 음악이 유럽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디스크도 여러 종류가 나왔는데 KBS에서 편집한 게 좋습니다.
LP가 나와 양면으로 50분 이상 녹음이 가능해진 이후 가장 각광을 받은 작곡가는 단연 말러일 것입니다. 1860년에 태어나서 늦은 결혼과 병고로 51년을 채 못채운 생애에서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 세계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으로 취급되어 고향이 없다는 자조 속에 10개의 교향곡과 3개의 가곡집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좌절과 초월, 불안과 희망, 죽음과 부활, 동심과 늙음과 같은 극단적인 대비를 교묘하게 교직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침잠케 하는 매력이 넘쳐 금세기에 들어와서 대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염가반으로 나온 교향곡 전집 모두가 지휘자별 특징이 있어 어느 것을 선택해도 됩니다.
탄생 또는 서거한 연도를 기준 삼아 작곡가를 기리는 유행도 있습니다. 금년은 오페라계의 양대 거장인 베르디와 바그너의 생탄 200주년이 됩니다. 레코드 업자는 차제에 재고를 처분할 수 있는 호기로, 오페라 극장은 애호가를 다시 끌어모을 전기로 삼기 위하여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미미합니다. 특히 바그너의 작품은 가수의 역량이나 무대의 구성상 어려움으로 국내에서는 한두 작품만 상연이 가능하나 그마저도 공연계획이 들리지 아니하여 안타깝습니다. 이 두 사람은 생전에서부터 여러 면이 대조적이어서 팬도 양분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특성을 살려 두 사람을 대표하는 곡만을 모아 오페라 갈라 형식으로 합창곡이나 관현악곡만을 모아서 비교하여 보는 것도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는 우리의 호기심에도 맞을 것입니다.
연주하는 방식이랄까 작품을 해석하는 태도에도 한때의 흐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정격 또는 원전 연주입니다. 작곡가가 작곡한 당시의 연주장 규모에 맞추어 악단을 편성하고 당대의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자는 일종의 회고적 흐름인데 일리가 있다는 공감을 형성하였고 정격 연주에 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까지 나왔습니다. 이 방식은 많아야 몇백명을 청중으로 삼고 또 음량이 작은 고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에는 맞지 아니하여 일시의 취향에 그친 감이 있습니다.
오페라나 발레의 경우 정형화 내지 고전화된 연출이나 안무를 반복하는데 식상하여 파격적으로 변신하는 유행도 있습니다. 오페라는 시대 배경이 되는 무대만이 아니라 의상까지 모두 현대식으로 바꾼 연출이 더러 있습니다. 최근 영화관에서 상영된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아이다가 그러하였고, DVD로 나온 불레즈 지휘, 파트리스 셰로 연출의 링 4부작도 중세가 아닌 현대가 배경으로서 약간 생경한 느낌이었습니다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고전은 역시 고전다워야 하는 소이는 원래의 자세를 유지하는 데 있지만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해석이나 모색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분은 없을 겁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