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원인은 내적인 것, 외적인 것 등으로 나눠
병에 의해 살아 있음을 확인받는 과정이 생명의 증거


인류가 형성될 때부터 병은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이 왜 병에 걸리는가 라는 질문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철학적’인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환자들이 “왜 저만 이런 병에 걸리나요?” 라는 원망 섞인 질문을 할 때마다 환자들이 자책할 만한 원인들, 예를 들면 “너무 짜게 드셔서요” 아니면 “운동부족입니다”와 같은 대답을 포함해서 몇 가지 원인을 말해주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 인간은 병에 걸린단 말인가?
한의학에서 병에 원인으로 생각하는 항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내인 외인 불내외인 정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self와 nonself로 나누고 그 외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들을 거칠게 묶어 경계를 정한 셈이다.
내인에 속하는 것 때문에 병이 생긴다면, 정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튼튼히 지키는 가가 병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여기에는 유전적인 영향으로 생기는 병들과 알레르기를 포함한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질병 외에도 심기부족으로 생기는 정신적인 질병들까지 결국은 그 개인의 오장육부가 갖고있는 정기의 차고 기움에 따라 병을 일으키게 된다.
외인에 속하는 병인들은 육기(六氣)의 변화로 행해지는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라는 외부적인 영향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일 수도 있고 오염된 환경, 부적합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병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 불내외인은 어혈이나 외상과 같은 것으로 자극에 대해 몸이 반응해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병리상태를 통칭한다.
이 세 가지 병인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아무래도 내인이다. 병의 원인을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찾으려 하고, 객관적인 조건보다는 환자의 주체적인 상황에 집중하는 게 한의학적 병인론의 특성이라면 특성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조절하고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것이 양생이다.
이에 반해서 다윈의학에서 제시하는 해답은 유전자까지도 객관적인 조건으로 놓고 접근한다. 진화론적 접근에서의 병은 몇 가지로 정리가 된다. 첫째로 인간을 질병에 걸리기 쉽도록 만드는 유전자의 존재이다. 사소한 결함들은 자연선택에 의해서도 살아남아서 새로운 환경요인과 반응하여 나쁜 영향을 주는 유전적인 변화를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며 인간이 진화라는 유전적인 변화로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결과, 지금 가지고 있는 면역방어체계로선 상대적으로 역부족이 되어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설계상의 절충에 의해 생기는 질병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두발로 서서 걷기 위한 대가로 치러야 했던 척추질환들과 같은 병이 그것이다. 생존을 위해 좀 더 중요한 진화의 과정에서 희생되었던 부분이다. 네 번째로 진화는 인류에게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병원체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독감백신이 완벽할 수 없는 이유가 바이러스가 자신의 모양을 자꾸 바꾸어 가며 숙주를 공격하기 때문에 모든 타입의 바이러스에 맞는 항체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훌륭한 진화를 거듭한 생명체이지만, 아직도 진화중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벽한 면역체계를 가진 생명체로 진화되기 전이거나, 혹은 인간만큼 병원체도 진화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진화와 관련된 유전자는 개인인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렇다면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보면 병에 의해서 살아있음을 확인받는 과정이 생명일 수 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달포가 지났고 새정부 새집행부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려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의자(醫者)가 ‘병’을 고민하고 위정자가 ‘정치’의 본질을 고민하고 법조인이 ‘정의’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바쁜 세상에 별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이런 본질적인 질문 자체가 없는 시작은 또한 슬픈 시작일 수밖에 없다.
의사와 환자와 만나는 진료실에서 정치인과 국민이 만나는 현장에서 혹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정에서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주체의 관점에 따라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계사년 나는 과연 어떤 질문들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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