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법무부로부터 두통의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직업이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무부로부터의 우편물은 몹시 낯설고 불안했다. 혹시 범칙금인가 하는 마음으로 뜯어본 순간 그 내용물에 잠시 말을 잊었다. 이게 뭐지? 내가 사는 동네에 성폭력 전과자 조모씨가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름, 나이, 키, 몸무게, 거주하는 아파트 이름, 동과 호, 아주 선명하게 나온 컬러 명함판 사진, 범죄사실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이래도 되나?
그 아파트가 어디더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잘 모르겠다. 바로 근처는 아닌 것 같다. 이 우편물의 사정거리는 어디까지일까. 우리 집에 어린아이가 있어서 온 건가. 아들만 둘인데. 변호사인 나도 잘 모르겠다. 성폭력 사건 피고인의 판결문에서 신상정보공개 몇 년이라는 내용을 본 적은 있었는데 그게 이런 걸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 이 사람은 어떻게 살지?
작년 추석 전날에 혼자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만취상태에서 종업원들에게 맥주병을 휘두르는 바람에 구속된 피고인이 있었다. 그는 성폭행 전과자였다. 성폭행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그는 경제 형편이 어려워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누나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매형은 그가 전과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범죄가 성폭행 사건인 건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전자발찌부착명령이 떨어졌고 매형은 자신의 딸과 성폭행 전과자를 한 집에 살게 할 수 없다며 노발대발하였단다. 누나 부부의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고 결국 그는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또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다.
어느 코미디 프로에서처럼 “여러분! 전자발찌부착명령은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입니까!”라고 외치고 싶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고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적은 쉽게 이기기 힘들다. 인생을 포기한 전과자는 무섭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전과자가 무엇을 할 것 같은가.
앞서 신상정보가 공개된 조모씨 사건은 성폭행 사건 중에서도 그다지 중하지 않은 것이었다. 요지는 모텔에서 여자를 강간하였다는 것. 여자가 남자를 따라 모텔을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성폭행 주장이 먹혀들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이제는 부부 강간도 문제가 되는 시절이 되었다. 단 1회에다 성폭력 사건 중에서도 그다지 중하지 않은 사건의 신상정보가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다니.
그 가족들은 이제 아들이나 남편과 따로 살아야 한다. 그 신상정보 공개의 효과는 단지 그 전과자에게만 미치지 않을 테니까. 누나집에서 쫓겨난 피고인처럼 그 아들이나 남편 또한 사회에 혼자 던져질 것이다. 과연 신상정보공개로 우리 국민은 더 안전해질까.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고 했다. 조심하는 것보다 그 범죄자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을 자꾸 코너로 몰면, 그들을 자꾸 그런 사람으로 단정해버리면, 그들은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자기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옆 동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여자를 강간한 사건이 있었다. 그 가해자는 자고 일어나보니 자기 옆에 화장품파우치가 놓여 있어서 의아했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가져온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 사건 이전에는 그냥 보통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성폭행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을 술집으로 잘못 착각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보통사람도 만취 상태에서 길거리 여자를 술집여자로 착각하고 강간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노래방만 가도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성폭행사건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하는 게 우습다. 이런 과민반응이 과연 피해자들에게는 도움이 될까.
법률조력인을 하면서 난 어린 피해자들에게 성폭력은 여타 폭행이나 상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구태여 성이라는 부분 때문에 더 우울해하거나 그들의 남은 인생이 그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부모보다는 살면서 겪게 되는 불행한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부모가 더 낫다. 물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인범보다 더한 시선으로 바라볼 일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 그 피해자는 실로 엄청난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하는 게, 지나친 처벌을 하는 게, 지나친 사후 조처를 하는 게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폭행 전력만을 두고 무작위로 압박할 게 아니라 성매매나 야동에 대해서 너무나 너그러운 사회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술에 대해서도 너그럽고 성매매에 대해서도 너그러우면 당신도 만취상태에서 헷갈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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