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겨울방학에 제대로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영화라도 보여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라이프 오브 파이’란 영화를 보았다. 미리 예약을 한 덕분에 오랜만에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3D 화면으로 감상하려니 감동도 더 크게 다가오는 듯했다. 4D로 볼 것을 추천하신 분들도 있었으나 물이 튀고 의자가 흔들리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겠으나 오히려 감상을 저해하지 않을까 하는 아날로그적인 마인드가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들은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한다. ‘파이’의 원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피싱(오줌)’이라고 놀림을 받자 자신을 ‘파이’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다 친구들이 놀리는 재미를 쉽게 포기할 리 없다. 그래도 파이는 포기하지 않고 ‘π’의 계산 결과를 칠판 바닥 세바닥을 넘길 정도로 틀리지 않고 외워냈다. 이쯤 되자 친구들은 그를 ‘파이’로 인정해 주었고 그때부터 그는 파이로 불리게 되었다.
파이와 가족들은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떠나는 배에 탑승해 길을 떠나는데 상상치 못한 폭풍우에 화물선은 침몰하고 가까스로 구명선에 탄 파이만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런데 구명 보트에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그리고 바나나 뭉치를 타고 구명보트로 뛰어든 오랑우탄이 함께 탑승해 긴장감이 감돈다. 굶주린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해치우고 파이에게도 달려들려하는데 그 순간 보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나타나 하이에나를 해치운다. 모두 그렇게 사라지고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 둘만의 길고도 아름다운(?) 조난여행이 시작된다. 죽음과 생을 넘나드는 여행 끝에 멕시코만에 도착하며 둘의 조난여행은 끝이 나는데 파이가 배를 끌어 해변에 대고 기절하듯 쓰러져있는 순간 리처드파커는 배에서 내리더니 ‘고맙다’ ‘다행이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야생의 숲을 향해 떠나버리고 만다.
그런데 영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난 사건을 조사하는 보험회사 직원들이 파이를 찾아와 조난의 원인을 물어온다. 그리고 그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한다. 이들의 질문은 우리를 영화에서 불러내 이성을 깨우며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자 끝까지 버틸 줄 알았던 소년 파이는 ‘이런 것을 원해?’하는 표정으로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폭풍우에 배는 난파되었고 자신과 조리장, 엄마, 배에서 만난 남자 선원 이렇게 네 명이 살아남아 구명보트에 올랐다. 다리를 다친 선원은 상처로 썩어가는 다리를 잘라내야했다. 몸부림치는 선원을 자신과 엄마가 누르고 조리장이 다리를 잘라내었다. 그것도 보람없이 선원은 죽음에 이르렀고 그의 시체는 조리장의 식사가 되거나 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로 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떨어져 고기잡이에 실패한 파이를 혼내는 조리장에게 파이를 위하여 대항한 엄마는 조리장에 의하여 살해를 당했고, 엄마가 먹힐까봐 파이는 엄마를 바다에 던져 떠나보내야 했고 파이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이렇게 홀로 세상에 남겨진 파이는 긴 조난 여행 끝에 신의 도움으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로.
파이는 이야기를 끝내고 질문을 던진다. ‘배는 난파되었고 저만 살아났죠. 사실은 두가지 이야기 모두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당신은 동물들과 같이 있었던 이야기와 없었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더 맘에 드나요?’
영화를 보고 문득 우리의 의뢰인들도 변호사에게 파이와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판사가 맘에 들도록’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파이처럼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대로는 감당하기 힘든 잔인한 진실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기에 변호사나 판사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적극적으로 의뢰인의 입장이 되어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사건을 바라보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 위하여 매진하는 것이 변호사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진실을 왜곡하여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진실을 가리고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더욱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을 잡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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