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남자에게는 혼자서 술을 한잔할 수 있는 단골술집이 있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마르크스적인 개념이 아니라도 인간에게 노동은 가장 신성한 것이고, 인간을 아름답게 하여주는 본질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한 인간이 밤늦게까지 자신이 하여야 할 일을 하고 귀가하는 길은 정녕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루의 일과를 충실하게 마친 사람이 귀가하는 길에 그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술 한잔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곳에 들러 한잔의 술로 그날을 마감하는 모습은 꽤나 낭만적인 것입니다.
그 단골술집에는 상당한 교양을 갖추고 지긋한 나이의 품격있는 주인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 주인장은 여자여도 좋고 남자여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 한잔 술을 마시며 주인장과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시사적인 것 또는 인생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은 어떤 경우에는 상당한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늦은 밤이고 저녁을 한 지도 오래되어 출출한 상태이어서 몇잔 술에 기분좋게 취합니다. 그리고 그 취함의 끝에서 깊은 상념에 잠겨 집으로 향해갑니다. 완전한 하루의 마감입니다.
또한 남자는 울어야 할 곳이 있어야 하고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중년 이후의 남자의 눈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중년남자의 눈물! 이것도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감동일 수도 있고요. 살면서 웃음 못지않게 울어야 할 때 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년의 남자가 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회의 인습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꼭 울어야 할 상황에서도 사회의 시선이나 자의식 때문에 울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요. 그래서 건축가 김중업씨는 집에는 울 곳이,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40대 초반의 어느 추석이었습니다. 대학졸업반 때 큰매형이 위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나는 상당히 친밀하였던 그분이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서,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비참함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죽음 앞에선 단 한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후 2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추석에 조카들과 매형의 묘소에 갔다가 근처에 있던 매형의 친가에 들러 사돈어른과 자리를 같이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그냥 펑펑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몸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나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두 번째는 10여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도 받으시고 몇 년을 노인병원에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자식들이 일곱이나 되는데도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때에도 장례식 기간 내내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례 마지막날 영원의 안식처로 향하는 영구차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회상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극도로 숨을 죽이며 아무에게도 눈치채지 않게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그럼에도 어디에 숨어 있다 그렇게 많은 눈물이 솟아나는지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고, 그 눈물은 꽃상여를 따라 하관할 때까지 내 외면에서 계속 솟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큰매형이 사망하였을 때 채는 마흔이 되지않은 나이로 제가 눈물을 흘릴 때의 나이보다 더 적었으며, 아버지의 경우 당신은 없고 오직 칠남매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고 껍질만 남은 채로 영혼의 안식처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눈물이 그러한 두분을 위한 것이었음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 나를 위한 정화의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수 없이 자신의 내면에 많은 분노와 회한 같은 것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와 같이 쌓인 감정들을 어떤 식으로든 분출해내고 정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남자가 혼자 갈 수 있는 단골술집이 필요하고 울고싶은 곳을 가져야 하는 것은 더 많은 부분 내면에서 자신만을 위한 비밀의 정화의식을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와 같은 곳을 찾지 못하여 주변과 세상을 보는 눈길이 불안하고 도전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더욱 열심히 그곳을 찾아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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