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잘못 만난 게 죄지, 걔가 뭔 죄가 있겄어요, 걘 지 애비에미 얼굴도 잘 몰라유.”
우툴두툴 검버섯 얼굴의 노파는 증인석에서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선서서에 쓰인 한글조차 못 읽는 이 촌로는 엇나간 손자를 위해 또 법정에 선 것이었다.
“나는 걔가 뭔 일로 여기 있는지도 몰라유. 몇 달만에 전화 와서는 법원에서 지 폐결핵으로 아픈 거 얘기 좀 해달래길래 안 간다고 소리소리 질렀쥬. 그래도 어쩌겄어유, 피붙이라곤 하나밖에 없는데…”
손자가 세살 되던 해, 아들 며느리는 헤어졌고, 손자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며느리는 그 길로 연락이 끊기고 아들은 거의 거지꼴로 떠돈다고 했다. 굽은 허리로 하루종일 밭일하는 할머니가 채우기에는 부모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고, 그 사이 손자는 서른을 넘겼다. 일찌감치 삭제되었을 법한, 수사경력자료란의 수많은 소년보호처분을 제쳐 두고라도 손자는 이미 두장이 넘어가는 전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번 법정에서 실형과 집행유예의 담벼락을 위태로이 넘나들고 있었다.
재판장이 물었다. “피고인,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많았겠네요?”
대답은 무덤덤했다. “원망이요? 사랑을 받아봤어야 원망도 들겠지요….”
내가 변호인이란 생각이 잠시 달아났다. 머릿속이 멍멍해졌다. 그 마음에 부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증오가 가득할 거란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다시 이 자리에 섰을까.
내가 국선전담으로서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는 외국인, 소년 전담 재판부다. 학교폭력이 심각하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그 가해자들은 제도권의 아이들이다. 나의 어린 피고인들은 가정, 사회, 학교에서 모두 방치되어 있다. 평균 학력은 중학교 중퇴 혹은 그 이하. 부모는 일찌감치 이혼하여 없거나,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죽는 것이 왜 무서우냐고. 가장 인상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죽으면 혼자잖아요.’ 적어도 사람에게 혼자됨은, 외로움은 죽음 자체는 아니라도 죽음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해서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외로운 아이들 곁에는 외로운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러다 보면 교도소 담장 위에 서 있게 된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범죄를 빼닮아있다. 절도로, 성매매로 주린 배를 채우고, 공허한 마음은 본드로 채운다.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 지내다 보니 물건을 훔치면 ‘특수절도’가 되고, 누군가를 때리면 ‘폭처법(공동폭행)’이 된다.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죄책감이나 세상에 대한 분노, 대단한 결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남들 사는 대로 사는 데 더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일탈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곁에서 붙잡아 주는 사람이 한명만 있어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아빠는 고엽제후유증으로, 엄마는 정신병을 앓다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A양이 그랬다. A양의 경우 상담센터에서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은 검정고시도 보고, 공장도 다니며 착실하게 새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가 내 삶을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준다는 것은 자기의 삶에 엄청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OO씨에게 할머니는 어떤 사람입니까?”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그냥…가슴이 아프죠. 앞으로 잘해 드려야죠.” 무표정했던 청년은 북받쳐 오르는 듯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의 스위치가 그제야 켜진 것 같았다. 할머니는 팔순의 나이에 손자를 다시 지방으로 데리고 내려가 보살피겠노라고 했다. 결국 청년은 할머니 덕에 다시 한 번 집행유예를 받았다.
할머니는 죽어도 오고 싶지 않다는 법정에 다시 오는 일이 없기를, 손자는 할머니한테 정말로 ‘잘 해드리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내 마음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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