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 동안 이주일에 한 번씩 ‘휴먼터치’라는 제목으로 작은 글을 써왔습니다. 삼십년 가까이 변호사를 하면서 춥고 아팠던 나의 경험을 쓰면 주위의 힘든 변호사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어떤 변호사를 추구해 왔나’라는 개인적인 의견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변호사들은 한 꺼풀만 뒤집으면 사실 양같이 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남모르게 흘린 눈물과 아픔을 자기가 만든 상자 속에 꼭꼭 숨겨놓고 있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지난해 두 분의 젊은 변호사를 만나고 짙은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한 여성변호사는 엄마가 파출부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제 막 개업하려는 새내기 변호사 한 분은 한 달에 백만원을 받는 신문 배달을 겸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변호사에게 이미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어 있었습니다. 돈에 대한 걱정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지난날 일부 변호사들의 화려함을 잣대로 자신이 불쌍하고 가난하다고 착각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27년 전 일입니다. 로펌에 인터뷰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옆에 신하같이 서 있는 변호사들이 로펌대표를 ‘장관님’이라고 부르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악취 나는 관료주의를 견딜 자신이 없어 사양하고 돌아왔습니다. 혼자 광야를 걷는 느낌으로 변호사를 시작했습니다. ‘살려니까 문제가 많지 죽으려면 무슨 문제가 있겠어?’라면서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 시절 꿈은 이랬습니다. 지하의 몇 평 공간이라도 나의 법률사무소가 있고 그 속에서 벽에 책을 가득 쌓아놓고 읽는 여유가 생기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주문받은 제품을 성실히 만드는 양복쟁이처럼 일도 사건의뢰가 들어오면 정성이 담긴 법률서류를 만들어 주는 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욕심 그릇을 작게 해야 넘치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신 변호사의 자존심은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한번은 대그룹 회장이 사건을 선임하겠다고 회장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담당재판장이 어려서부터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회장 당신이 의뢰인 자격으로 와서 정중하게 요청하라고 했습니다. 수임료도 개인변호사지만 일류로펌과 똑같이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금액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한 번에 낸 부가세가 5000만원, 의료보험료가 3000만원이 될 정도로 고액이 들어온 적도 있습니다.
세월이 가고 어느새 환갑이 닥쳐왔습니다. 젊은 시절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책장에는 읽을 책이 가득합니다. 사무실 문을 나가면 산책할 서리풀 공원에 청명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나는 꿈보다 훨씬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믿는 그분은 더 이상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집착을 가지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내게 주어졌던 이 지면조차 계속 되면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듯 신선한 시각을 가진 젊은 변호사의 의견들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변호사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이제 물러갑니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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