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정 이행을 위하여 2011년 12월 2일 개정된 저작권법 등 지식재산법은 저작권 등 침해소송에서 권리자의 증거수집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영업비밀이 포함된 자료를 소송절차에서 비밀누설에 대한 부담없이 현출시킬 수 있도록 정보제공 명령과 비밀유지 명령 제도를 도입하였다. 저작권법은 이들 제도에 관하여 비교적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우리보다 앞서 이들 제도를 운용하여 본 외국의 선례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그 실효성이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아래에서 이들 제도에 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 증거수집을 위한 침해자 정보제공 명령
가. 의 의
저작권 침해 소송에 있어서 침해의 정지 등 각종 조치를 청구하거나 권리자가 입은 피해액 또는 침해자가 침해로 인하여 얻은 이익의 액을 산정하기 위한 증거 수집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증거 수집의 차원에서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손해액의 산정 등 침해의 구제에 필요한 증거로서 침해자가 보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증거의 제출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례나 국제조약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한·미 FTA 협정은 각 당사국이 법원에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정보 제공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법원의 정보제공 명령을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벌금 또는 징역의 형사적 제재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한·미 FTA 협정 제18.10조 제10항).

나. 저작권법의 내용
이러한 한·미 FTA 협정 이행을 위하여 개정된 현행 저작권법에 의하면, 법원은 저작권 침해 소송 중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다른 당사자에 대하여 침해 행위, 침해물의 생산 및 유통에 관련된 자를 특정하기 위한 정보, 침해물의 생산 및 유통 경로에 관한 정보 등의 제공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제도의 특별 규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제공 명령에 따르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법원은 그 정보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을 진정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효과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영업비밀이나 사생활 보호와 관련된 경우 등 일정한 경우에는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저작권자의 이익과 침해자의 이익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자 하였다.
그 구체적 내용은 저작권법 제129조의2(정보의 제공) 규정에 나와 있다. 제1항에서는 제공하여야 할 정보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정보의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경우를, 제3항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제공 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법원은 정보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 정보제공 명령 위반에 대한 효과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2. 소송 당사자에 대한 비밀유지명령
가. 의 의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에서는 지적재산권이 적용된 상품의 제조 방법 등 생산기술상의 정보라든가, 판매 방법, 관리 방법, 고객 리스트, 매출액, 거래 규모 등 경영상의 정보와 같은 고도의 영업비밀이 불가피하게 상대방 당사자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송과 관계없는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영업비밀에 대한 접근을 엄격하게 차단하여야 할 것이지만, 소송에 관여하는 당사자나 소송대리인 등에 대하여는 무기평등의 원칙 및 방어권 보장의 차원에서 소송에 제공된 증거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프로그램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소송을 제기한 경우, 피고가 적극적인 반증으로서 자신의 프로그램 소스코드가 원고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고가 관리하고 있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피고의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재판부에 제공하고자 하는데, 원고가 반론권 보장의 차원에서 해당 영업비밀을 원고에게도 공개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송 당사자에게 모든 증거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자유로운 소송 활동을 보장하여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는 점과 무기평등의 원칙 및 반론권과 방어권을 보장해 준다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송 중에 일방 당사자의 귀중한 영업비밀이 그것도 경쟁사업자인 상대방 당사자에게 노출되어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도 있다. 그러므로 증거수집절차에서의 영업비밀 제출을 통한 영업비밀 노출의 위험을 감소시켜 줌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여 줄 필요가 있는데, 그에 대한 방안으로서 제시된 것이 소송 당사자에 대한 비밀유지명령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소송의 준비 또는 소송 진행 중에 제시된 증거나 소송 자료 중에 포함된 영업비밀에 접근하여 알게 된 소송 당사자 등에게 소송의 목적을 넘어서서 해당 영업비밀을 이용하거나 누출하지 말 것을 명하는 법원의 명령이다.
나. 저작권법의 내용
한·미 FTA 협정의 의무사항에 따라 저작권법은 제129조의 3(비밀유지명령) 규정을 신설하였다. 그 내용은, 저작권의 침해에 관한 소송에서 그 당사자가 보유한 영업비밀에 대하여, ① 이미 제출하였거나 제출하여야 할 준비서면 또는 이미 조사하였거나 조사하여야 할 증거에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② 그 영업비밀이 해당 소송수행 외의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공개되면 당사자의 영업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영업비밀의 사용 또는 공개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의 사유를 모두 소명한 경우에는 그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결정으로 다른 당사자, 당사자를 위하여 소송을 대리하는 자, 그 밖에 해당 소송으로 인하여 영업비밀을 알게 된 자에게 해당 영업비밀을 해당 소송의 계속적인 수행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해당 영업비밀에 관계된 비밀유지명령을 받은 자 외의 자에게 공개하지 아니할 것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129조의 4(비밀유지명령의 취소) 규정을 신설하여, 비밀유지명령을 신청한 자나 비밀유지명령을 받은 자는 제129조의 3에서 규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갖추지 못하게 된 경우 소송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법원(소송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법원이 없는 경우에는 비밀유지명령을 내린 법원)에 취소를 신청할 수 있음을 규정하였다.
나아가 영업비밀이 누출될 경우 해당 영업비밀의 보유자인 당사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비밀유지명령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을 부과할 수 있는 벌칙규정을 두었다. 그리하여 저작권법 제136조(벌칙) 제1항에 제2호를 신설하여, 제129조의 3 제1항에 따른 법원의 비밀유지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한 경우에는 저작재산권 침해의 경우와 같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 비밀유지명령의 적용범위 및 효과
저작권법은 신설된 제129조의 3 내지 5에서 비밀유지명령의 발령 및 취소 등의 요건과 절차 등에 관하여 매우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비밀유지명령제도를 통하여 소송 과정에서 제공·제출된 영업비밀을 보다 엄격하게 보호함으로써 영업비밀과 관련된 사항을 그 영업비밀을 보유하고 있는 당사자가 누출에 대한 부담 없이 법원에 제시할 수 있도록 하여 입증과 심리의 충실을 도모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실체적 진실발견에 이바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비밀유지명령은 저작권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에 관한 소송에서 적용된다. 여기서 침해에 관한 소송에 본안소송뿐만 아니라 가처분 사건도 포함될 것인지에 관하여 논의가 있는데, 넓은 의미의 소송에는 보전소송도 포함된다는 점, 저작권을 비롯한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의 상당수가 가처분 절차를 통하여 이루지고 있고 그에 따라 가처분이 본안소송화 하는 것이 실무의 경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처분 사건에도 비밀유지명령 제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다만, 특허권과 관련된 직무발명 사건이나 심결취소소송 등에는 비밀유지명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밀유지명령의 효력은 그 결정서가 비밀유지명령을 받은 자에게 송달된 때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저작권법 제129조의 3 제4항). 비밀유지명령의 존속기간에 대하여는 따로 규정이 없으므로, 일응 저작권법 제129조의 4에 의한 비밀유지명령의 취소가 있기까지 그 효력이 존속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비밀유지명령을 받은 회사 직원이 전직하거나 퇴직한 경우는 물론이고, 소송대리인의 수임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그 효력은 존속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비밀유지명령을 받은 관계인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시기 이후에는 비밀성의 요건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되는 영업비밀에 대하여는 비밀유지명령을 발령할 때 그 존속기간의 종기를 명시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라. 비밀유지명령 제도의 실효성
일본의 경우 비밀유지명령 제도가 도입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발령건수는 고작 3, 4건에 불과할 정도로 그 이용이 저조하다고 한다. 이는 비밀유지명령 제도가 그 명령을 받은 자에게는 향후 사업이나 유사 업무 수행에 막대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부담을 부과하는 한편, 그 명령을 신청하는 자에게는 과연 비밀유지의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비밀유지명령을 발령하는 법원의 입장에서도 발령절차나 취소절차의 심리과정에서 영업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절차 진행에 각별히 신중하여야 하는 등 부담이 크다는 점도 이 제도의 활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비밀유지명령 위반에 대하여 형사벌을 부과하는 것과 민사상 과료를 부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비밀유지명령 취소 절차와 아울러 비밀유지명령의 효력기간을 일정 기간으로 제한하되, 그 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영업비밀성을 상실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을 소명하여 적절한 기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제도를 운용할 우리 실무계도 이러한 점에 관심을 가져 모처럼 도입된 제도가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오승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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