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 신임 회장 나 승 철 변호사

처음이었다. 인터뷰에서 충분히 다 말하지 못했으니 다음날 이어서 더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사람은.
꽤 오랫동안 수많은 법조인을 인터뷰해왔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하고도 미진했다며 다시 해줄 것을 부탁해온 법조인은 처음이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사상 첫 30대 회장을 배출한 서울회는 어쩐지 공기도 달라진 것 같다.

“아무래도 어제 인터뷰에서는 선거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선거과정 이야기가 재미야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라고 생각해 다시 뵙자고 청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밖에서 비판하고 활동하다가 안에서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회원들이 기회를 주신 만큼 청사진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에서 할 수 있는 것, 서울회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연구기능 강화입니다. 사법시험 존치문제를 포함한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는 체계적으로 집중해 연구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유사 직역들의 소송대리권 분여 주장이 거센데 단기적, 대증적 조치만 취한다면 언제까지고 수세적 입장일 수밖에요. 하나하나 자기 권리를 지켜가고 확장해가는 한 전문가단체를 보면서 우리도 좀 제대로 논리를 개발하고 전략적으로 임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가 그리는 서울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주로 쓰는 단어는 ‘변화’였고 그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변화가 아니라 500명, 1000명 회원일 때의 프레임을 9000명 회원 시대에 그대로 욱여넣다 보니 꼭 해야 하는 절박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관성적으로 해오는 일들, 매년 해오는 일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반복해온 회무들이 낭비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회무경험이 없다는 것, 그것은 서울회의 회무를 회원의 눈으로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강점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설명. 야유회 행사에 버스가 8대 동원되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고가의 기념품을 지급하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하는 것들이 보이는 식이다. 나 회장은 왜 서울회 회장 선거를 대형 호텔에서 스테이크 먹으며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 투표하는 시간은 한 시간여에 불과하다. 500, 1000명 회원일 때 정초에 한번 얼굴보고 식사하며 정을 나누는 자리로 의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소모되는 비용에 비해 향유하는 회원 수는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는 것. “왜 이렇게 하지?”라는 의문이 들면 파고들고 개선점을 고민한다. 이제 1만명 회원 시대다. 그에 맞는 형식과 회무를 만들어 가야하는 시대라고 절감한다.

서울회 회장이 되면서 목표로 삼은 것들을 물었더니 “첫째는 회무에서 낭비요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불합리하다 느껴지는 것은 고쳐나갈 겁니다. 둘째는 공약의 실천입니다. 사회전반에 대한 것으로는 사시존치운동을 계속하고 업계의 일로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인식 제고에 매진할 겁니다. 그리고 법조 주변의 브로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수수방관했지만 브로커로 인한 청년변호사들의 피해도 심각합니다. 세 번째는 변협이 이전해갔기 때문에 변호사회관 5층이 비었어요. 그 공간을 어떻게 회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까 고민 중입니다.”

회장 선출 후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았는데 목표들이 정연하다. 변호사회관 활용문제는 취임 이후 생각한 문제일 텐데도 많은 계획이 서 있었다. 하긴 원칙이 분명하면 세부적인 계획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회관은 변호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곳이니만큼 회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싶은 공간, 쉴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하는 게 분명합니다. 현재 계획은 연수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으며 필기하기 편하도록 책상도 있는 고급스러운 강의실로 꾸미고 싶습니다. 1층은 회원들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유명인사들을 초청,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대법관님들의 강연도 좋을 거 같고요. 콘텐츠와 강의시간 등이 좋으면 회원들의 참여율이 높을 거라고 믿습니다. 마침 회관의 구조를 변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으니 회원들이 오고 싶어 할 곳으로 만들어야죠.”

서울회 회장으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상반된 요구에 다 귀 기울이고 되도록 다 수용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회원 수가 늘어나는 만큼 요구와 생각이 다양하고 목소리도 커졌다. 잘한다는 칭찬보다 못한다는 비판이 더 많고 큰 목소리를 지닐 수밖에 없을 터.

“처음 당선되고 나서는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방은 커지고, 전화는 계속 오고, 컴퓨터도 사용하던 게 아니어서 힘들고…. 서울회는 팀제라서 한 팀에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배정해 하루에 4~5개 팀의 보고를 받았어요. 밖에서 생각할 땐 왜 저렇게밖에 못하나 싶던 것도 이해하게 됐어요. 나쁜 걸 좋게 고치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조직을 존중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걸 연구하는 사람이지 조직을 배격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열심히 일하는지도 알게 됐고요. 전임 회장님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애쓰셨는지도 압니다. 제가 강성 이미지라 걱정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환하게 웃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순수함이다. 많은 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한 회원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나 회장의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이야기이든 열린 자세로 듣는 것, 정말 계산 없이 로스쿨원장 추천 검사임용제 철폐 투쟁에 나서고 관철시켜나가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했다.

“그때가 서울회 회장 선거 떨어진 지 한달 반 정도 지났을 때니 무슨 계산이 있었겠어요? 저는 그런 게 즐거워요. 누구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는 것이요. 지금은 한창 서울회 일이 재미있어요. 선거운동 과정에서 북부지법 변호사공실에 들른 적이 있어요. 한 원로 변호사님이 저를 꼭 안아주시며 반가워하셨어요. 주변의 변호사들에게 일일이 소개하시는 모습이 필시 집안어른이신가 본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아 난감했어요. 나중에 학교 선배시라며 연수원 6기라고 소개하셔서 저를 모르시는데도 이렇게 열렬히 응원해주시는구나 하는 감격에 젖었어요. 지지층이 이렇게 넓구나, 싶기도 했고 제 주장에 호응해주신 분들이 많다는 생각에 사명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사실 낙선 후 지인들에게 다시는 선거에 안 나간다는 말도 했었어요. 그런데 네가 안 나가는 것은 청년변호사들이 일궈온 변화의 물꼬를 막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결심하게 됐어요.”

변화의 구심점이 이미 된 사람이 누가 대신해주길 기다리는 것은 책임의 방기가 아니었을까. 낙선 후 2년간 그는 변화의 목소리를 주도했고 행동했다. 임신을 이유로 강제휴직 당했다는 여변호사를 위해 고발장을 제출했고 변호사시험 평가보고서를 작성했다. 각종 세미나에서 청년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로스쿨 원장 추천으로 곧바로 검사가 되도록 하는 안에 대해서는 시위를 주도했다.
행동하는 회장이 만들어갈 서울회의 변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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