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등 환자 보호자, 우울증 생기기 쉬워
긴 병에는 효자도 없고 깊은 사랑도 지친다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가지는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의 병이 중풍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손발이 혹 저리거나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어지럽거나 하는 증상이 생기면 혹시 중풍이 아니냐고 걱정한다. 뇌졸중 혹은 뇌출혈과 같은 중풍의 원인이 될 고혈압이나 당뇨환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적인 사실과 주위에서 중풍 때문에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들을 만난 경험 등은 이런 공포감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게다가 근래 들어서는 중풍을 걱정해야하는 연령층이 점점 내려오고 있어 이런 공포감은 노인뿐 아니라 더 젊은 층으로 퍼지고 있다. 우리 한의원에서도 얼마 전까지 이제 서른살이 갓 된 젊은 처녀를 중풍후유증으로 치료했으니 그 걱정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중풍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빨리 죽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고 반신불수라도 되어 자식들을 고생시키면 어쩌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긴 병에는 효자도 없고 아무리 깊은 사랑도 긴 병구완에 식어버린다.
한의원을 열고나서 10년 가까이 보아온 환자 중에 나보다 너덧살쯤 많은 여자가 있다. 꽤나 준수한 외모에 말하는 모습이나 자태가 고왔던 그녀가 일년에 한두번씩은 사소하게 다쳐서 나타나 치료를 받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빛나던 그녀가 해가 거듭할수록 조금씩 피폐해져 가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녀의 삶을 저렇게 조금씩 황폐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폐아를 가진 엄마였다. 자녀의 정신질환은 특히나 감춰져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다. 진찰과정에서 그녀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여서 넌지시 무슨 근심이 있냐고 물어봤고 그때서야 울면서 털어놓았다. 자폐와 같은 정신질환이 온전히 가족의 몫인 한국에서 환자의 엄마는 죄인이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게 된다. 그 모든 보살핌의 노동과 정신적 고통을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감내한다. 자식이 감기만 걸려도 혹 옷을 잘못 입혔나 조금 늦게 알아채서 병을 키웠나 별의별 반성을 다하는 사람이 ‘엄마’인데 자폐라는 큰병 앞에서 엄마이기 때문에 힘든 내색 한번 못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았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하게 아프다. 그러니 생기발랄한 젊은 여자가 망가져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얼마 전 치매를 앓는 부인을 살해해 실형을 받게 된 한 노인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환자 보호자로서 겪는 고통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대안을 의료 체계 안으로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할아버지의 살인을 정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공적의료가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살펴야만 하는 멀쩡한 환자보호자를 보호하는 아무런 체계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가족치료의 개념에서 접근해야 하는 질병들이 있다. ‘정신질환’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가족 중 누군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으면 가족 구성원 전체가 그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상 경도 혹은 중등도의 이상을 나타낸다. 특히 주양육자 혹은 보호자는 더 적극적으로 상담을 통해서 점검받고 치료해야 한다.
만성병을 앓는 환자는 대부분 우울증상을 경험한다. 또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치매나 중풍환자를 돌보아야만 하는 가족의 경우에도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경우도 많다. 어떤 질병이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노인질환이 증가하는 시대에서 적절한 대응책은 좀 더 건강하고 생산적인 인력 확보에도 필요한 일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환자에게 매달려야만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노령화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모드로 진행할 것이 뻔하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보살피고, 병에 걸렸더라도 쉽게 병원을 찾을 수 있게 하며, 설령 오랫동안 아프더라도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있는 사회―여러 가지 아픔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바라는 사회다. 끊임없이 고민하면 어쩌면 거기에 꼭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근처쯤이라도 도착하지 않을까.



/오디한의원 원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