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만리장성과 책들’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만리장성의 축조를 다루면서 과거라는 시간은 말살하고 축성을 통해 공간은 새롭게 하여 역사를 새로 시작하고자 했던 것의 우주적인 관점에서의 의미를 묻는데서 에세이를 시작한다.
시황제는 반대세력이 서책을 근거로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하여 자신의 재위 이전의 책들은 모조리 불살라버리도록 하였지만 과거가 지워지지도 않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혹독한 사례로 남겼을 뿐이다.
군대 내 불온서적 금지와 같이 국가가 금서목록을 정하는 것이 아직도 허용되는 나라에 산다는 생각이 불현듯 시간·공간적으로 혼동이 온다.
필자가 존 밀턴의 저서 ‘아레오파지티카’를 읽게 된 것은 언론의 사전 검열과 표현의 사전억제의 위헌성을 다룬 미네소타주의 공중도덕보호법에 관한 니어 v. 미네소타 283 U.S. 691(1931) 판결을 이끌어낸 원고측 변호사들의 변론에 감동을 받아서이다. 이 변론에서는 역사상 표현의 자유에 억압당하고 희생당한 소크라테스, 예수의 사례도 등장하고 존 밀턴, 존 스튜어트 밀 등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 여러 사상가의 저술이 등장한다.
존 밀턴이 1644년에 작성한 ‘아레오파지티카’는 1859년에 J.S.밀이 작성한 ‘자유론’과 더불어 언론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전으로 간주되는 위대한 책이다. 바로 이 책에서 표현의 자유의 원리로 널리 사용되는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아이디어가 최초로 제시되고 있다. 20세기 미국 연방대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한 여러 판례에서 존 밀턴의 이론이 인용되면서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핵심원리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밀턴은 영국의회가 제정한 출판허가법을 비판하고 출판허가제의 폐지를 주장하기 위하여 영국의회에 보내는 항의 연설문 형식으로 소책자를 펴냈는데 그 제목이 ‘아레오파지티카’이다. 부제목은 ‘허가없는 출판의 자유를 위한 잉글랜드 의회에 대한 연설’이라고 되어 있다. ‘아레오파지티카’의 의미는 그리스의 고등법정에서 이루어진 아테네 웅변가의 연설을 유추하기 위해서 그리스어를 조합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허가받지 않고 펴냈다.
밀턴은 “불만이 자유롭게 청취되고 깊이 고려되며 그리고 신속히 개선되는 그런 자유가 현인들이 추구하고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최고 수준의 시민적 자유이다”라고 하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밀턴은 출판허가제는 두뇌를 억압하는 것이고 태어나기도 전에 대량학살을 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검열은 우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하고 무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종교적, 시민적 지혜의 발전을 저해하고 배움을 방해하며 진리의 발전을 막아 명백히 해가 되고 국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위기 국면에 처했을 때 이성적으로 논쟁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이며 지식과 미덕 양자를 개진시키기 위해서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사상을 계속 검증하는 것만이 그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성에 의해 옳은 것과 틀린 것 그리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으며 이러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사고에 제한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밀턴은 당대 유럽의 최대 논객이었다. 영국 찰스1세가 처형된 후 올리브 크롬웰의 공화정부에서 일할 때는 대외적으로 영국혁명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밀턴은 그 당시에 성격불일치를 이유로 한 이혼의 자유를 옹호하는 책도 내었고, 국가가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는 종교의 자유, 왕도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 등 다방면에 걸쳐 수세기를 앞선 사상가였다.


/배금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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