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시절 좋~았다는 말, 아직도 가끔 듣게 된다. 변호사 사회의 몇십년 전 이야기다. 그 시절엔 변호사가 서면도 쓰지 않았지만 의뢰인들이 기록보자기에 돈도 보자기로 싸들고 변호사사무실 앞에 줄을 섰다는 둥, 내로라하는 전관의 경우 종이 한장에 원하는 형을 갈겨 써서 사무장을 통해 검사실에 가져다 주더라는 둥… 지금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공감도 가지 않고 확인도 할 수 없는 믿어지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다.
보통변호사를 자처하며 회원들의 이익 옹호를 위해 국회에 가서 살 각오가 되어 있다는 지방 변호사님이 대한변호사협회 수장으로 당선되고, 청년변호사들의 소외문제를 들고 나온 청년변호사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수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변호사 사회도 이제 생활밀착형 회장을 선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 줄 협회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회원들의 공감대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단연 화두는 ‘청년변호사’다.
새로 선출된 협회가 해 주어야 할 일은 무엇보다 변호사 직역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과연 변호사 직역 전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일까? 그동안 많은 회장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말해 온 공약들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유사직역들의 불합리한 소송대리권 침탈 기도로부터 변호사의 소송대리권을 지켜내야 하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타 등등. 그리고 많은 회원들이 변호사로서의 직역이기주의에 가까운 공약들에 환호하고 있는 과열된 분위기도 감지된다. 회원들의 너무나 많은 요구 속에 협회의 일을 할 분들은 향후 회무계획을 짜면서 숨이 찰지도 모르겠지만, 현명하게 우선순위를 매겨 잘 진행해주면 좋겠다.
사견으로 협회에 바라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열심히 노력하는 변호사에게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법률서비스시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다. 당장 일자리 몇 개를 늘리고, 일정 요건의 직책에 변호사를 강제선임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에 비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변호사로 살아가는 자존감과 명예,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도록 할 수 있는 첩경은 단연 정의로운 법률서비스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전관예우가 통하는 시장에서 소위 연수원 내지 로스쿨 출신 청년변호사들이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는가?
물론, 얼마 전 ‘젊은 변호사의 고백’이라는 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전관예우의 뿌리깊음에 대한 고백과 성찰의 글을 통해서도 느꼈던 바와 같이, 전관예우를 근절하고 공정한 경쟁이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대한민국 법률시장에서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와 같은 일을 하려다 잘못하면 변호사업계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 법률시장에는 의사업계의 리베이트와 같이 변호사가 판사에게 청탁성 뇌물을 제공하는 형태의 전관예우보다 더 뿌리깊고 무서운 전화 한 통의 인간적인 전관예우가 있다. 무혐의로 결론이 난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원 판사의 전화처럼 법조계 누구도 심각하게 부당하거나 불법이라 생각지 않는 일상적인 전화 한통, 연수원 동기끼리 법대 선후배끼리 주고받는 일상적인 전화 한통은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필자도 담당하고 있는 사건 중에 유독 재판부의 심증이 불리하게 형성되고 재판부가 우리 측 얘기를 잘 귀담아 듣지 않고 아무리 주장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 힘겨운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너무 답답해서 판사님들의 프로필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앞으로는 전관예우가 없어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전문가 변호사가 대우받을 수 있는 업계 환경이 정착되어 변호사들이 판사 프로필 검색하는 일 없이 기록만 열심히 보면 되는 공정한 시장이 형성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새로운 시절의 도래를 위해 협회가 앞장서 주길 감히 바라본다.
그래야만, 화려한 전관 경력이나 발 넓은 판검사 인맥도 리베이트로 제공할 재물도 없이 오직 실력과 사건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진검승부가 가능한 법률서비스시장이 도래할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워킹푸어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청년변호사들의 한숨이 희망으로 전환되는 우리들의 새로운 시절이 도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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