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 당선된 변협 협회장과 서울회 회장에 대해 듣고 싶다고 했다.
순간 생각해 보니까 둘 다 혼자 개업해 힘들었던 사람들이다. 언론은 변호사집단의 이기주의를 싫어한다. 그들이 국민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두분 다 가난한 개인변호사 출신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회장이 됐으니 가난한 국민과 진정으로 공감하지 않겠습니까?”
몸으로 직접 고통을 겪어야 다른 사람들이 아픈 걸 이해한다.
“회장이 된 사람이 구체적으로 좋은 행동을 한 사례가 있으면 알려주시죠.”
조선일보 기자가 다시 날카롭게 질문했다.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성변호사들이 출산휴가도 받지 못하고 또 등록지를 이전하는데 탄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변협이 침묵하고 있을 때 개인변호사로서 혼자 외치고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행동하는 용기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기자가 비로소 수긍하는 목소리다.
얼마 전 커피숍에서 찾아온 나승철 후보와 한참 동안 얘기했었다. 그는 연탄난로를 때는 초라한 변호사사무실에 가보니까 울컥 가슴에서 치솟는 게 있더라고 했다.
몇 번 봤지만 그는 감성이 풍부했다.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 따뜻함이 새로운 변호사 지도자의 덕목이다. 나는 그에게 변호사들이 수입이나 사회적 대우보다 먼저 마음이 풍요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부자다. 자기를 억제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현명한 인간이다.
내 말은 단순한 감상이나 관념은 아니다. 31년 전 여름 어느 날 새벽 두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고시생 세월이 십년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옆방에는 아내와 딸이 자고 있었다. 계속된 실패로 열등감에 젖어 있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자격증만 얻게 해 주시면 연탄구루마를 끌더라도 평생 행복하겠다고. 진심이었다.
그렇게 합격을 하고 가난한 변호사로 출발했다. 남의 사무실 귀퉁이에서 초라하게 시작했다. 그래도 난 불평할 수 없었다. 장롱 속에 넣어둔 변호사자격증만으로도 평생 행복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니까.
나는 나승철 회장의 감상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예전 같으면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변호사조차도 되지 못했을 수 있다.
나는 새로 당선된 두 회장이 변호사들의 시각을 바꾸어주었으면 한다.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사회의 새로운 지평이 열려야 한다. 변호사단체 리더 자리에 보통변호사가 당선됐다. 가난해서 출판기념회도 열지 못했다는 위철환 신임 변협 협회장이다. 번지점프를 하고 변호사로 출발한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다.
개인적인 야망과 허영을 누르고 소박한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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