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히 민사소송인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들이 변호사와 공동소송대리를 하겠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자 언론은 이것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폄하해 버린다.
그릇 기(器)자를 들여다보면 입 구(口)자 네개 사이에 개 견(犬)자가 들어있다. 그릇 기(器)자는 ‘많은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개를 두고 지킨다’는 뜻이니,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알 만하다.
변호사가 소송에서 이기려면 필요한 게 바로 기량(器量)이다. 변호사로서의 기량이라면 법률전문지식과 순발력과 임기응변을 모두 포함하는 말일 것이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사는 1심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증인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위증으로 입건하고 기소하였다. 그러고는 항소심에서 위증 수사기록과 공소장을 추가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변호인에게 증거의견을 묻는다.
“공판기일에서 이미 증언을 마친 증인을 검사가 소환한 후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 내용을 추궁하여 이를 일방적으로 번복시키는 방식으로 작성한 조서이므로 부동의합니다.”
그런 증거는 부동의하면 증거능력이 없으므로(대법원 2000. 6. 15. 선고 99도1108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그로써 법원에 제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어야 한다.
그런데 검사는 “그렇다면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한 탄핵증거로 제출하겠습니다. 증거능력이 없는 서류도 탄핵증거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변호인 입장에서는 무슨 증거로서든, 참고자료로서든 법정에 현출되어서는 좋을 게 없는 서류들이다. 기습을 당한 것이다. 이럴 때 변호사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재판장이 다시 변호인의 증거의견을 묻는다.
“검찰에서 탄핵증거로 제출하겠답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탄핵증거는 법정 증언 이전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에 한정하여야 합니다. 증언 후에 증인을 수사기관에서 신문하여 작성한 조서를 제출하는 것은 공판중심주의와 공정한 재판의 이념에 반하고, 피고인의 소송주체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것이 되므로, 탄핵증거로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판부는 합의를 위해 휴정을 하고 나서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검사의 탄핵증거 신청도 기각하였다.
법정에서는 이런 일도 벌어진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검찰 측 증인에 대해 꼬치꼬치 반대신문을 하고 있는데, 검사가 갑자기 일어나서 이의를 제기한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변호인은 지금 유도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반대신문에서는 필요하면 유도신문을 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규칙 제76조 제2항입니다.”
“변호인, 계속 신문하세요.”
변호사에게는 기량만 있으면 될까?
그릇 기(器)자 이야기를 하는 마당에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군자불기(君子不器)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군자는 모름지기 밥그릇과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나?”라는 말을 한다. 성균관대 신정근 교수에 따르면, 군자불기는 네모(□)를 벗어나지 못하는 스페셜리스트의 함정을 지적하는 말이라고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군자불기는 제너럴리스트의 길을 뜻한다.
재판은 결국 사람의 일이고 마음의 문제이다. 법전만으로는 다양한 현실에서 해법을 찾아낼 수 없다. 법전을 해독하여 현실에 적용하려면 또 다른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변호사로서의 기량도 절차탁마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변호사도 인문학적 상상력과 도량(度量)이 더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못 했지만 말은 할 수 있다.
“우리 법조후배들이여, 모쪼록 기량과 도량을 두루 갖춘 군자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황정근 변호사
jghwang@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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