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격자무늬 갈색 홈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올림머리를 한, 젊은 시절 어머니의 사진이었다. 그 옆에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수줍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볼이 통통한 내가 보였다. 촌스러운 모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30여년 전일까? 그때는 우리 엄마도 피부가 참 고왔구나.’
이젠 주름과 검버섯이 빼곡히 들어찬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젊은 날 어머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도 홍조 띤 동그란 아기볼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과 닮아있다.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며, 당신의 철부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다고 믿고 싶은 자식들에게 그 과거 이야기는 정말 생소하다. 그 생생한 추억을 전해 듣고서야 ‘그래, 엄마에게도 내가 모르는 무수한 젊은 세월이 있었겠지’ 새삼 깨달으면서 그래도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젊은 날의 어머니를 상상해본다. 그리 멀지 않아 내 자식도 나를 보며 내 젊은 날을 떠올리기 힘든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30년 후 내 모습을 미리 비추어 주는 마술거울 같다. 어머니뿐 아니라 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5년 후 내가, 10년 전 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 공존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의 단편 중에 ‘작은 우화’라는 글이 있다. 한 소년이 처음으로 집을 떠나 세상을 향한 여행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희망을 가득 안고 피리와 노래를 벗 삼아 숲과 들길을 걸어가는 소년에게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예쁜 소녀를 만나 달콤한 입맞춤도 해보고, 이름 모를 풀벌레와 더불어 즐거운 노래도 불렀다. 이윽고 넓은 세상으로 그를 인도해줄 강이 나타났고, 강 위 작은 나룻배 한 척에는 온갖 세상풍파에 시달려온 듯한, 나이 지긋한 노인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이 배에 오르자 노인은 노를 저었다. 정처 없이 빠른 속도로 강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소년은 태양과 사랑에 대한 행복의 노래를 불렀다. 노인 역시 소년에게 화답하듯 노래했다. 노인은 사랑의 고통과 삶에 맞닿은 죽음, 빛과 함께하는 그림자를 노래했다. 노래 속에는 소년이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괴롭고 험난한 세상살이의 진실이 담겨 있었다.
더 이상 어둠과 슬픔의 노래를 견디기 어려웠던 소년은 노인에게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되돌아갈 길은 없으니,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가라며 소년에게 노를 건넨다. 노를 넘겨받고 노인의 자리로 옮겨 앉던 소년은 문득 깨달았다. 배 안에는 자기 혼자뿐이었다. 늙고 외로운 몸으로 오랜 시간 어두운 강물을 홀로 흘러온 것이다. 소년은 강물 위로 등불을 비추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세상을 깨달은 바로 그 노인의 얼굴이 있었다.
내가 본 사진 속 어머니는 꼭 나만큼 세월의 강을 흘러온 모습이었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아이의 얼굴은 소녀의 얼굴이 되고, 소녀는 다시 어머니로, 할머니로 모습을 바꾸어 왔던 것이다. 티 없이 맑던 얼굴에 시간의 발자국이 하나둘 새겨지면서 걱정과 슬픔의 주름도 늘어갔다.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도, 모든 일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어제를 살아오셨고,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박수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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