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인가… 영감님이라는 과도한 존칭을 사용해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피고인이 있었다. 당시 주변 변호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과거에는 그런 대접을 많이들 받으셨다고 한다. ‘아~ 그랬구나’라고 생각했다.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다보면 어떤 변호사님의 이름을 대면서 내가 그 사람 친구라고 본인 소개를 하는 피고인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난 “그래서요? 그게 저하고 상관있나요”라고 반문했었다. 그 사람들 말이 맞는다면 교도소에 있는 피고인들의 상당수가 변호사를 친구로 두고 있는 셈이다. 아주 친구가 많은 변호사님도 계신다. 영감님에서 친구라니, 좀 심하다 싶은 추락이다.
텔레비전 예능프로를 보는데 MC가 게스트에게 좀 불편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돌직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 뜻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통해 확인을 해보았더니 돌직구란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때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란다. 딱 내 스타일이다.
국선전담을 할 때 나는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3%가 넘는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피고인의 가족들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이미 수회의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고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에서 항소심에서 선처를 기대하는 가족들이었다.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그들에게 난 “아드님이 그나마 교도소에 있어야 살아있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그 피고인은 자신이 운전을 한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였다.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고 사고로 죽지 않은 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난 그 이야기도 해주었다. 난 솔직했고 가족들은 불쾌했다. 그 피고인의 어머니는 사선 변호사를 선임했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 선임된 변호사님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 변호사님에게 피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만 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차이가 있는 건가 싶었다.
주위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난 그런 돌직구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다. 그게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식의 자기 위안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난 그들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그들에게 당신 사건은 사선 변호를 선임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교도소에서 피고인을 접견할 때 피고인이 자신들이 뭘 해야 선처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방법이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었고, 결과는 내 예측에서 한 치도 어긋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피고인들은 선고가 나오기 전에 실망해야 했고, 가족들도 노력해볼 의지조차 꺾인 채 일찌감치 포기를 해야 했다.
나의 돌직구는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만을 상대로 한 것은 아니었다. 천성이 그랬다. 법률조력인 간담회가 검찰청에서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변호사님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원하는 게 결국은 합의금이 아니냐고 하셨다. 난 너무나 화가 나 격앙된 목소리로 그분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그 현장에 있으셨던 다른 변호사님 덕분에 나의 스타일에 대한 소문은 멀리멀리 퍼져나갔고 난 쌈닭이 되어버렸다.
그런 돌직구가 개업을 했다. 다행인 것은 혼자가 아니라 경험이 많으신 두분의 변호사님들과 함께라는 것이다. 대표변호사님은 처음부터 내가 의뢰인이나 판사님들과 싸울까봐 조마조마해하셨다. 피고인들에게 당신 합의 안 보면 구속될 거라고 했더니 도주해버리거나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버렸다. 아~ 이러다가 거지되겠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변호사라는 직함에 붙던 권위는 없다. 변호사는 법률서비스를 해주는 전문직 종사자일 뿐이다. 돌직구 스타일로 살아남기에는 환경이 너무 척박해졌다.
이제는 갓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어법을 순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서 우회적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비겁하고 답답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돌직구 스타일 포기 선언을 하고자 한다. 누가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변하기 힘들다고 했던가. 나는 변화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이.
박정교 변호사 pjg7d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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