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취미이건, 혹은 전문적인 투자이건 미술품 가격은 언제나 흥미로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 지수를 발표하였다. 작품 지수는 지난 한해동안 우리나라 주요 경매사에서 경매된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을 분석하여 수치로 계량화한 것이다.
이 단체가 국내 주요작가 100명 평균 호당가격을 지수로 비교한 결과 가장 비싼 작가는 박수근으로 호당 평균가는 2억750만원이다. 이는 지난해 1억6000만원보다 29.69% 상승한 것이다. 박수근의 작품 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2위는 이중섭(53.82)이며 천경자(17.61), 김홍도(14.86), 장욱진(9.97), 김환기(9.32) 등이 뒤를 이으며 인기작가의 계보를 형성했다.
이들 중 지난해보다 100% 이상 큰 폭의 상승률을 보인 화가는 장승업(조선말기, 765%), 천경자(139%), 김홍도(조선후기, 125%) 등이 있으며, 호당 가격지수가 50% 이상 하락한 화가는 이징(조선후기, -78.8%), 곽인식(-64.9), 이인성(-56.8), 전병현(-50.9), 변종하(-47.9), 윤중식(-47.3), 윤형근(-44.2) 등이다.
작품 가격의 등락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분석과 계량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작품 가격에는 화가의 명성과 스토리, 제작 년도, 보존 상태, 작품의 소재와 질, 크기, 사회적 상황에 따른 유행 등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단연 이중섭이었다. 이중섭은 일본인 아내와의 사랑, 일본에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특유의 소박하고 천진한 화면 등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함으로써 가장 인기 있는 작가가 되었다. 당시 이중섭 그림은 호당 200만원 정도로 박수근 그림에 비해 두배 이상 비쌌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두 작가의 작품 값은 역전된다. 당시 이중섭의 작품이 호당 1000만~1500만원일 때 박수근의 호당 가격은 1500만~2000만원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수치 비교로만 본다면 박수근의 작품은 지난 20년 동안 거의 10배 이상 오른 것이 된다. 투자로 본다면 분명 매력적인 상승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작년 인기작가의 작품가격 비교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해에 반토막이 나거나 아예 거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폭락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우리의 미술시장이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였음을 웅변해 주는 것이다. 단순한 취미의 차원을 넘어 투자의 대상으로 미술품을 인식한다면, 이는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항목이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은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과 거리’이다. ‘시간’은 작가나 작품의 올바른 품평과 안정적인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인기작가라 하더라도 그것이 시간의 세례를 거쳐 객관적인 평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 ‘거리’는 바로 작가와의 직접적인 관계가 소멸되어야 비로소 작가와 작품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작가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인사들이 미술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경우, 그 평가는 객관적일 수 없다. 실제로 생존 시 우리나라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던 한 작가의 경우 작고하자마자 가격이 폭락하여 급기야 거래마저 실종되어 버린 사례가 있다.
현실적으로 모든 작가의 작품이 박수근이나 이중섭의 경우와 같을 수는 없다. 만약 그러한 기대를 하며 미술시장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투기꾼의 행태와 다름없는 것이다. 소박한 애호가에서 출발하여 미술품을 보고 즐김을 반복하다 자신의 기호와 안목에 맞춘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컬렉터로의 입문이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한 접근 방식일 것이다. 적어도 미술시장은 미다스의 손이 빚어낸 황금의 땅도 아니고 로또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미술평론가
ksx0011@dongd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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