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것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참으로 다행이다. 어찌되었든 가족을 부양하는 1차 책임은 남자에게 있으니, 나는 조금 벌고도 큰소리 칠 수 있고 힘든 일은 미룰 수 있고 투정부릴 수 있고 계속하여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와 같은 나의 생각은 엄청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어찌되었든 가족을 보듬고 애들을 잘 키우는 1차 책임은 아내에게 있으니(적어 놓고 보니 틀린 말일 수도 있겠다^^), 나는 애들한테 잔소리하느라 목이 쉬고, 시부모와 친정부모 눈치보고, 새벽밥 지어 출근시키고 학교 보내며, 힘들다며 넋두리하는 온갖 소리들을 들어주어야 하니까.
직장이랍시고 다니다보니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미소를 짓기보다는 소리를 질러서 문제를 해결하고, 참고 이해하기보다는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상처를 덮어버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무슨 무슨 기념일이나 때가 되면 내가 무언가를 해줄 생각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무엇을 왜 안 해주는지 트집잡고,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안 보살펴주느냐고 짜증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지없이 내 인생은 재미없고 불행한 것이 되어버렸다. 상대방은 언제나 내 기대를 저버리기 때문이다.
요즘, 행복감을 느낀지 너무 오래되어 왜 이렇게 안 행복한지 스스로를 돌아보던 참에, 조성민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성민은 그 자신이 매우 핸섬하고 유명한 야구선수였지만, 최진실과 결혼한 이후 항상 최진실의 남편으로 인식되어 불행하게 살았다.
2000년에 최진실과 결혼하면서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리울 만큼 화려한 출발을 하였으나, 2002년부터 별거하고 2004년에 이혼하였다. 이혼한 후 아이들은 조씨에서 최씨로 성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2008년에는 최진실이 자살하고 유산 때문에 친권을 행세하려한다는 온갖 비난을 받은데 이어, 2010년에는 처남이었던 최진영마저 자살하였다.
그 스스로는 2013년 1월에 목숨을 끊었다. 평소에 어디를 가나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너무나도 힘들어했는데,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마저 결별을 통보받고 일을 저지른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타이레놀을 다섯개나 먹어도 바늘로 살살 신경을 긁는 것 같은 미세한 아픔이 도대체 가시지를 않았다. 그들의 복잡한 사정을 알 수도 없고 감히 짐작도 못할 지경이지만, 우선 아이들이 불쌍했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불행해하고 힘들어했을 그가 너무 안 되었다. 아마도 그가 그러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 기저에는 ‘너에게 의지하려 했으나, 용이치 않았다’가 있지 않았을까.
크리스마스니 생일이니 결혼기념일에 선물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어 너무 섭섭했다. 특별히 기대도 안했지만, 정작 기대에 부응하여 아무 액션이 없으니 말은 못하고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아침나절에 뒤통수에 대고 눈을 흘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밤 늦게 피곤한 기색으로 들어온 것을 보니 밉기도 하면서 불쌍하기도 하였다. 문득 나는 그런 중요한 날 무엇을 해주었는지 생각이 들었다. 몇 분을 생각해봐도 해준 것이 없었다. 나는 안 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상대에게만 바라고 기대를 하였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미안했다.
우리는 늘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으려 하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늘 누군가가 나를 먼저 생각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상대가 먼저 행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상대가 안 해주면 나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인생은 수동적이고 불만투성이가 되어버린다. 결국, 상대에 의해 내 행복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정말 옳지 않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쥐고 흔드는 격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늠하는 그 버릇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그냥 내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너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가 너에게 ‘의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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