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친정’을 찾아보니 결혼한 여자의 부모 형제 등이 살고 있는 집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나의 제목은 틀렸다. 나의 이번 글 제목은 분명 여성변호사의 친정이 아닌 모든 변호사들의 친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여성변호사뿐만 아니라 모든 변호사들은 나름 친정을 가지고 있고, 그 친정문제로 삶의 희로애락을 느낀다.
오늘은 그 친정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길러본 사람들은 안다. 친정없는 분들, 혹은 친정이 빈약한 사람들의 서러움을 말이다. 잘난 친정 신세지기는 결혼하면서 사랑과 젊은 열정으로 포기하였지만 육아에 지쳐본 젊은 부부라면 아기 맡기고 마음 편하게 부부끼리 영화 한편 볼 수 있는 친정(장모)을 가진 친구가 너무 부러웠을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집사람이 장녀고, 처가가 서울이라 톡톡히 덕을 보았다.
로펌에서 나와서 단독개업 해보니, 그 친정 빈약한 여인의 서러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법원, 검찰 출신 변호사들에게 법원과 검찰은 결혼한 여자들의 친정과 같다. 아니 그들은 실제 ‘친정’이라 부른다.
내가 보면 그분들은 자주 친정의 신세를 질 뿐만 아니라 친정사람들의 행동이나 평가에 대하여 민감하다. 친정을 진정으로 위하고 걱정한다는 말이다. 이해가 된다. 그들은 친정과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없을 때에도 밥자리에서, 술자리에서 친정걱정, 친정칭찬 또는 비난을 많이들 한다. 그런 확실하고 명확한 친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연수원출신 변호사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서럽다.
그런데 생각하니 나도 친정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친정이라고 우길 비빌 언덕이 있었다. 내가 7년간 근무한 로펌이다. 간혹 명절 선물도 보내주시고, 친정식구들이 드물게 사건도 소개한다. 친정로펌이 잘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곰곰이 생각하니 연수원 마치고 바로 개업한 후배들도 나름 친정이라고 비빌 언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법연수원이 친정같은 모양이다. 인원수가 1000명에 육박하다보니 지도교수님이나 같은 반 동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마치 친정식구처럼 서로 의지하고 돕고 사는 모습처럼 말이다. 내 친구인 연수원교수 출신 변호사는 제자들의 취직에 열성이다. 마치 친정아버지 같다.
개업변호사 초기에는 현직출신들의 친정이 이해관계집단 관점에서만 보였는데 나이가 드니 그들의 친정이란 추억과 마음을 둔 곳이었다. 그런 친정은 모든 변호사들에게 있는 것이었다.
젊은 변호사들이 로스쿨을 반대하고 연수원 존치를 주장하는 것도 이해관계관점이 아닌 애정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좀 된다.
다만, 지금의 모든 변호사관점에서 가장 친정이 빈약한 사람들은 로스쿨 출신변호사들이다. 내 친정이 잘되기를 바라던 그 마음으로 그들의 친정이 잘 되기를 바라본다. 어찌되었건 장래 법조계의 미래는 그 친정의 번성에 달려있는 것이 현재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 기자명 박형연 변호사
- 입력 2013.01.15 17:33
- 수정 2013.07.05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