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1월 14일에는 대한민국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대한변협 협회장이 최초의 전국 직선제로 선출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나고 후보는 후보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선거로 인한 피로감이 매우 컸다. 이미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앞으로 다가올 변호사단체의 선거를 생각해보면, 최근 최고의 화두는 ‘리더의 자격’에 관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나는 두번의 대한변협 협회장 선거에 관여한 바 있고, 2년 동안 대한변협 사무차장직을 수행했다.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각자의 삶이 전쟁처럼 퍽퍽하다보니 변호사단체의 회장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변호사단체의 회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다. 관심도 없지만 사실 관심이 있다고 해서 집단행동으로 의견을 반영시키거나 회무를 시정하도록 만들 수 있는 수단도 없다. 하지만 회비와 경유비는 꼬박꼬박 자동으로 납부한다. 돈 걱정도 없고 자기 돈이라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 사람도, 그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으니, 사사로이 2년을 보내고 떠나면 그만인 것이 우리 변호사단체의 회장직이다.
어쨌거나 나 또한 지난 2월경 대한변협 사무차장직을 그만두고 청년당 창당 및 총선 출마를 결심하면서, 우리 변호사업계의 선거나 회무에 대한 모든 관심과 애정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때가 되면 그렇게 할 예정이었고 때가 되었기에 그렇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거’, ‘권력’, ‘감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음해와 뒷담화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질시, 공격, 로비, 얄팍한 계산과 야합 등 우리 변호사업계도 기성 정치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축소판이라고 판단했고, 아울러 나의 꿈과 미래를 더 큰 세상에서 펼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 방향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던 중 최근에 서울지방변호사회장(나에 대해 최근 문제된 일들의 주체는 서울회 규정상 ‘서울회’가 아니라 ‘회장’이라고 명시되어 있다)이 나의 소속변경등록 신청서류를 대한변협에 전달하지 않고 소속변경등록을 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일이 발생했고, 내가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울회는 친절하게도 전체 서울회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담아 이메일을 보냄으로써, 누구라도 ‘지방회장’ 이 ‘기타 사유로’ 소속회 변경을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회원들에게 일깨워주었고, 더불어 나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 업계의 선거와 회무를 둘러싼 그간의 모든 일들로 인해 내가 느낀 회의와 인간 군상에 대한 환멸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냉정한 심리상태로 접어든 지금은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사람’과 ‘권력’에 관한 매우 값진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설사 상대가 철천지원수라고 해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 바로 ‘가족과 생업(生業)’이다.
이번 일로 인해 내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사악한 기운에 나 자신도 놀라면서 깨달은 사실은, 앞으로 내가 맡은 지위에서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적(敵)이 생기더라도 그 가족이나 생업을 건드리는 일은 함부로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적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고 권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나의 동반자가 ‘내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해주었다. 더러운 정치판을 이겨낼 만큼 모질지 못하다는 것과 내 가슴 깊은 곳에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력을 ‘쥐려고’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지막 이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 역시도 권력이란 ‘쥐는 것’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권력을 생각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권력을 ‘내려놓을 준비’라는 그의 말에 나는 이내 수긍했다. 그리고 매우 많이 부끄러웠다.
그저 죽기 살기로 움켜쥐려고만 하고 온갖 이해타산과 자신의 안위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지만 결국엔 자신의 얕은 바닥만 드러내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악수를 두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안 되는 사람은 있다.
우리 업계에도 선거 전은 물론이고 선거 후에도 ‘회무의 공공성’에 관해 회원들의 적극적인 감시가 쉽게 가능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이번 선거에서도 두 가지만은 꼭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공정한 사람인지, 회무에 임하려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인신공격성 폄하나 음해와 같은 저급한 수단으로 자기편을 만들려는 후보는 혹시 없는지, 권력을 얻으려는 주된 이유가 ‘자기희생’과 ‘봉사’에 있다는 진심이 느껴지는지, 나약한 자들의 굽실거림을 즐기면서 권력을 함부로 쥐고 휘두르는 그 맛에 빠져 철학도 원칙도 없이 자기과시적인 감투를 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무’는 공공성을 띠어야 하고 ‘휘두르는 것, 누리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 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지 않은 후보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해주는 일은, 결국 유권자들의 통찰력과 소신 있는 한표의 행사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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