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는 사람들에게만 마수걸이가 중요한 게 아닌 듯하다. 한의원도 마수걸이를 어떤 환자로 시작했느냐에 따라서 그날 하루의 환자층이 달라진다. 발목 염좌환자로 시작하면 그날은 다른 날보다 발목환자들이 많다. 첫 환자가 깐깐한 사람이면 하루 종일 환자들과 입씨름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하고, 첫 환자가 행려환자거나 자원봉사해드리는 분이면 그날 수입은 반갑지 않다.
오늘은 아침부터 배아픈 환자들이 몰아치다 급기야 열살 먹은 남자애가 원장실 바닥에다 토하기까지 하고서야 오전진료가 마감됐다.
한의학에서 운기(運氣)를 배우면서 들어오는 천기(天氣)가 어떤가에 따라서 그해에 혹은 그날에 태어나는 사람들의 약한 장기가 정해지고 혹은 그해에 유행하는 질병을 추정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거기까지는 능력이 되지 않아서 치료에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염좌(捻挫)나 식체(食滯)같이 전염성 있는 질병도 아닌 병으로 동일 증상 환자들이 우르르 밀어닥치면 진짜 운기론의 어느 부분을 만나는 것 같다.
연말 연시라는 분위기도 있고 국가의 큰 행사를 겪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속이 쓰리게 아프고 또 어떤 사람들은 존재감을 폭발시킨 자긍심에 부른 탓인지 뱃병들이 많이 생겼다. 요사이는 하다못해 감기로 오는 환자들까지도 소화장애를 동반한 경우가 허다하다.
항생제나 진통제를 복용하고서 오는 소화장애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일의 앞뒤와 표현이 확실한 어른들은 통증이 어땠는지 언제 심해지는지 무엇 때문에 배앓이가 시작되었는지 병인과 병의 양태를 찾기가 쉽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큰 애들조차도 그저 배아프다는 표현뿐이고 아픈 부위를 짚어보라고 해도 꼭 배꼽부위에서 멈추기 다반사다. 배꼽 말고 배에 뭔가 표식이 될 만한 것도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감기약을 먹고서 속이 더부룩해졌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도 흔한 편인데 미열이 있어서 빈속에 먹인 부르펜 시럽 혹은 두통으로 인해 손쉽게 구해 먹은 아스피린이 복통 내지는 더부룩함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해열진통제나 항생제 등은 식후에 복용해야 한다는 복용법을 우습게보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치료해야하는 위염이나 식도염 등의 질병으로 변할 수 있다. 단순한 과식으로 인한 식체하고는 좀 다르다.
한의학에서는 비주사말(脾主四末) 이라는 표현이 있다. 소화기에 해당하는 비장이 손발 사지(四肢), 즉 사말(四末)을 주관한다는 것인데 잘 먹고 소화를 시켜야 손발에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반대로 소화능력이 떨어질 땐 사말을 추동(推動)해서 비장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화제 광고에서도 나왔듯이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어려우면 몸을 움직이는 게 제일 먼저 해볼 일이다. 그 정도로 풀릴 일이 아니라면 역시 침치료가 제일 빠른 방법이긴 하다. 그렇지만 전문가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만히 있지 말고 일단은 손발을 자꾸 주무르고 눌러주는 것이 좋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하며 아픈 자식의 배를 쓰다듬고 손발을 주물러주는 것이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나온 행동이었을지라도, 신기하게도 편안해지면서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손길이 기체(氣滯)했던 것을 통하게 만들면서 비·위장을 편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의서인 ‘망위지신관형찰색’이란 책 중 소아추나광의편에 소아의 안마술에 대한 기술을 적은 책이 있다. 여기에는 아이가 구토 설사 복통 이질 학질 간질 등 각종 질병에 걸렸을 때 수족이나 두면부를 안마하는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얇은 낱장 뒷면에 일일이 한지를 덧대 배접하여 튼튼하게 다시 묶어 만들었는데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병든 아이를 살리려는 간절함이 한장 한장마다 배어 있어 사뭇 감동적이다.
이 방법만이 전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성장마사지를 해주는 아이가 안 해주는 아이보다 더 잘 자라고, 고열로 고생하는 아이는 미지근한 물로 몸을 계속 닦아주며 마찰해주는 것이 어떤 해열제보다도 빠르게 열을 내리게 한다는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에는 대상을 치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것 그게 살리는 힘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병든 사람이든 병든 사회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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