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규격화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어쩌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꿈꾸며 사는지도 모른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의 무리로 착각하고 무찔러야 한다며 무모하게 돌진한다. 그렇지만 때마침 불어온 거센 바람에 힘을 얻은 풍차에 휘말려 멀리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돈키호테를 과대망상 환자쯤으로 치부하며 그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돈키호테를 그렇게만 평가할 수 있을까?
민경한 변호사의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을 읽으며 내내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저자는 민변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해 온 삶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몸으로 살아온 법조인이다. 그의 저서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은 그가 법조인으로서 뼛속 깊이 경험한 구체적 사건 중심으로 법조계의 모순과 비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초짜 변호사 시절부터 중견 변호사로서의 관록이 붙은 현재까지 그가 법정 안팎에서 경험한 사건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부딪친 검사 및 판사, 사건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전개하고 있어 재미가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케 만드는 촌철살인의 글로 가득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법조인들이 얼마나 권위의식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으며,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법조계의 비리를 법조인만이 체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법조인들만의 리그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연극판인지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판사, 출세에 눈이 어두워 수사를 왜곡하는 정치검사들의 비리,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하게 영혼을 파는 변호사들을 향해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정의의 구현자로서의 법조인의 올바른 자세인지 묻고 있다. 그러한 탐욕과 불의의 길에 들어서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해 왔지만 혹시라도 그런 유혹 앞에 스스로 무너진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모습은 새삼스레 거울 앞에 비치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숙연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관예우가 공공연한 법조계의 구조적 문제들, 재판부와의 사적 우호관계를 내세워 사건 처리가 유리하게 될 거라는 허풍을 치며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챙기는 후안무치한 변호사들, 사건 소개 브로커들에게 제공되는 커미션을 둘러싼 동굴 속 이야기들, 재판과정에서 되지도 않은 권위를 내세우며 당사자들을 향해 반말을 찍찍 해대는 판사들의 우스꽝스러운 허구,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들어와 재판절차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게으른 판사들의 재판진행 모습, 무리한 수사권 행사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며 권력남용의 괴물로 변해 버린 검찰의 추악한 모습 등 법조계의 치부를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성심성의를 다해 재판을 진행해 준 고마웠던 재판부에 대한 변호사로서의 감사함, 약자를 보듬는 검찰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존경심, 인권보호를 위해 애써온 동료 인권 변호사들에 대한 외경심 등 법조계의 아름다운 모습도 많이 그려놓았다.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법이 정의를 상실할 때 법은 무서운 흉기일 뿐이다. 그러기에 법을 집행하는 자는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정의의 종점에서 불의가 시작되기에 정의는 칼날의 범위가 넓어야 하고, 필 수 있을 때까지 피는 꽃이어야 한다. 정의가 포기되는 곳, 정의가 상실된 곳에 불의와 불법, 부패가 횡행하기에 정의는 언제 어디서든 의지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강해야 한다. 까닭에 법조인은 자신의 역할이 세상을 심판하는 신의 영역임을 명심하고 정의의 실천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행함이 신의 뜻에 부합했는지 되돌아보며 신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며 방해하는 자들에게 무너지지 않을 불굴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돈과 권력의 유혹 앞에서 견뎌낼 수 있는 깨끗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을 통해 저자는 동료 법조인에게 묻고 있다. 아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갇혀 있는 동굴의 깊이는 몇 미터인가?”라고. 프란시스 베이컨은 우리더러 동굴의 우상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하였다. 저자도 이 책을 통해 체제에 순응하며 몰가치적 직업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 “법조인의 사명이 무엇인가?” 묻는다. 우리를 향해 과감하게 돈키호테가 되라고 주문한다. 모든 이들에게 민경한 변호사의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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