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어디냐고 묻는 말에 강남역이나 역삼동에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뜸 “좋은 동네에 있네”라고 한다. 지방에 사는 의뢰인 중에는 서울 강남 심장부에 있는 법무법인이니 수임료가 비싸도 감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나도 수임료를 낮춰 달라는 의뢰인의 요청에 사무실 월세 이야기를 하면서 재치있게(?) 넘어가기도 한다.
벌써 오래 전부터 강남은 좋은 동네가 되었고, 강남이 아닌 곳은 낡고 후진 동네가 된 세상이 되었다. 생소한 얘기도 아니다. 강남, 정말 좋은 동네인걸까? 직장이 강남 한복판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걸까?
강남으로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여름 어느날이었다. 출근이 늦어 마지막 층인 지하 4층에 처음으로 주차를 하게 되었다. 아주 어두컴컴했다. 주차를 한 후 턱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를 찾으면서 살펴보니 지하 4층은 주차장과 겸해서 쓰레기 분리수거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지하까지 차 있었던 한여름의 더운 공기는 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와 함께 역한 기운을 뿜어내었다.
그런데 그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지하 모퉁이에 작은 방이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 건물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의 휴게실이었다.
방 안에는 작은 텔레비전과 밥솥, 냉장고 같은 최소한의 전기용품이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방금 식사를 마치셨는지 벽에 등을 기대어 쉬고 계셨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나와 건물을 말끔히 청소를 한 후, 그곳에서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면서 고단한 몸을 잠깐 누이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고작 이 건물에서 월세나 내면서 일하고 있는 임차인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노동에 대한 터무니없는 대접이 마치 내 탓인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화장실 벽까지 손걸레로 닦아내는 고귀한 노동의 시름을 달래는 곳이 자동차를 놓아두기도 싫을 정도로 답답하고 냄새나는 쓰레기장 옆의 손바닥만 한 방이라는 현실… 그 초라한 작은 방이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최대치였던 것일까.
전체 임금노동자 중 청소노동자는 숫자로 7위에 이를 만큼 청소노동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건물의 지하나 주차장 옆 안 보이는 곳에 깊숙이 숨겨져 있고, 그마저도 없는 곳도 많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청소노동자들은 계단이나 창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식은 밥을 먹고 있다고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청소노동자인 김순자씨는 “남들 눈에는 하찮아 보이는 청소노동의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에 당당히 출마했었다. 그녀는 국회에 들어가 가장 먼저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의무화하는 건축법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건축법이건 노동관계법이건 대형 건물 건축 허가 시에는 건물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노동자들, 경비를 서고 주차장을 관리하고 청소를 하고 배관과 전기를 담당하는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의무로 하게 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개그 중 ‘소고기 사먹겠지’ 개그를 살짝 패러디해보면서 새해에는 수많은 화려한 건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그녀들과 그녀들의 휴게공간에도 당당하게 빛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좋은 동네면 뭐하겠노, 임대료만 비싸겠지. 임대료 비싸면 뭐 하겠노, 건물 주인만 좋겠지. 건물주인만 좋아서 뭐하겠노, 일하다가 쉴 곳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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