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이라크를 방문한 한 사진 작가는 티그리스강 유역에 차를 마시러 나온 이라크인들을 보았다. 황토 화로를 들고 나와 석양을 바라보며 가족들과 끓여 마시는 차는 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작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한 남자에게 물었다. “위험이 닥치기 전에 떠나야 하지 않나요?” 그는 대답했다. “붉은 미사일이 날아오는 그날도 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나와 강가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차를 끓여 마실 겁니다.” 가족의 사진 속에는 오후의 햇살 아래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는 젊은 부부와 해맑은 얼굴의 두 아이가 있었다.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 훅은 미국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교정을 가득 수놓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을 때 갑자기 교실 안에서 끔찍한 총성과 비명이 울려 퍼졌다. 20명의 어린이들과 교직원 6명이 스무살 청년의 무자비한 총격에 처참히 쓰러졌다. 사고로 여섯살 딸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대중을 향해 눈물의 추모사를 발표했다. 그는 딸에 대한 애끓는 부정을 전하면서, 자살한 범인의 가족에게도 정말 힘든 경험일 것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새하얀 눈꽃송이를 흩날리며 2012년이 떠나가고 있다. 그 많은 번잡함과 소란스러움도 차디찬 12월의 끝에서 잠시 기운을 잃은 듯하다. 끝과 시작이 교차되는 시점이 겨울이라서 참 다행이다. 분노와 미움의 찌꺼기까지 시린 칼바람 속에 꽁꽁 얼려서 먼지처럼 툭툭 털어버리고 싶다. 특히 2012년과 함께 떠나보내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폭력’, 그것이다.

폭력은 그것을 휘두르는 인간과는 구별해야 한다. 그것은 바이러스처럼 형체도 없이 세상을 떠돌다가 기생하기 좋은 환경을 만나면 염치없이 철썩 들러붙는다. 궁지에 몰리고 정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폭력은 주인 행세를 하며 호통을 친다.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온 폭력은 전쟁, 범죄, 학대, 소외 등 다양한 얼굴로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세를 키워간다. 그리고 서로를 잡아죽일 듯 증오하는 사람들을 보며 축배의 잔을 높이 든다.

나도 아무런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가끔은 내 속에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공포에 당황한 적도 있다. 그 분노와 공포의 근원이 어디일까를 더듬어가다, 내가 그동안 겪어온 무수한 폭력들이 그 원인임을 알았다.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무자비한 체벌을 가하던 중학시절 한 선생님의 모습,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흥행 영화의 한 장면, 수시로 들려오는 전쟁 위협, 유행처럼 번지는 사람들의 자살 소식이 내 잠재의식 속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폭력을 부르고 있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폭력에 폭력으로 답하는 해묵은 어리석음을 과감히 떨쳐버렸으면 좋겠다. 언제고 머리 위로 붉은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차를 마시며 감사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아마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숨과도 같은 딸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이의 가족에게도 위로를 건네는 아버지의 용기가 큰 가르침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가족들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누군가는 폭력 앞에 극히 취약해지게 된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가 폭력에 취약한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폭력의 표적이 되고 만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마음 속 폭력을 영원히 잠재우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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