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당연히 시대적 요소의 영향을 받는 예술분야입니다. 시대적인 요소란 당대에 유행하는 예술 사조나 정치, 사회, 경제적인 전반의 분위기일 것입니다. 나아가 음악은 작곡가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나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예술과 시대의 상관 관계에 관하여는 수다한 논의가 있어 왔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흔히들 이탈리아 등 남구의 음악은 밝고 경쾌한 반면 북구의 경우 어둡고 무겁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지리적 풍토의 영향이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오페라는 시대적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리적 풍토적인 요소가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 오페라가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데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명작과 오페라 지휘자나 가수가 탄생한 곳으로서 가히 종주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오페라 명작을 만들어낸 롯시니, 도니체티, 벨리니, 베르디, 보이토, 레온카발로, 푸치니, 마스카니, 조르다노가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지요. 이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쉽게 즐긴다는 것은 아리아나 합창 등의 뛰어난 선율성으로 따뜻하고 밝은 풍토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으로 전파되면서 여전히 그 특색이 유지되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본거지 이탈리아 오페라를 뛰어 넘는 오페라의 대가였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듯이 당시 빈은 음악에서 이탈리아풍이 지배하던 곳이었는데 모차르트가 본 고장 이탈리아보다 더 뛰어난 이탈리아식 오페라를 만들어 냈습니다. 마스네, 구노, 비제, 베를리오즈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오페라도 친숙해지기 쉬운 아리아, 중창과 합창이 차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에 따릅니다.
비슷한 풍토이지만 스페인에는 뛰어난 오페라 작품이 눈에 뜨이지 아니하나 그 대신 사르수엘라라고 부르는 오페레타 비슷한 장르가 있습니다. 대사와 노래와 춤으로 구성된 서정극 형식으로서 바로크 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가지며 스페인의 식민지인 쿠바, 필리핀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사르수엘라 곡집이 레코드로 나와 있으며 한번은 들어볼 만합니다.

모차르트 이후 독일에서는 오페라의 독일화를 외친 베버가 자유의 사수에서 그들의 역사상 제재를 가져오고 독일어 대본을 사용한 데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과 단절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분위기에서 달라졌는데 어딘가 모를 독일의 풍토색이 느껴집니다. 베토벤도 유일한 작품인 피델리오에서 베버를 답습하였습니다.

바그너도 초기에는 발레를 넣는 등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을 따랐지만 곧 자신의 오페라는 음악극이라고 달리 부르면서 무한선율과 불협화음을 과감히 넣고 각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선행주제(Leitmotiv)를 창작하였습니다. 독일 오페라의 집대성인 링 4부작은 각 주인공의 선행주제를 미리 알고 들으면 접근이 훨씬 용이합니다.

슈트라우스는 살로메와 엘렉트라에서 바그너풍을 따랐지만 말년에는 장미의 기사와 아라벨라에서 이탈리아풍으로 돌아갑니다. 체코가 낳은 스메타나의 예누파, 오수드(운명), 카티야 카타노바 등은 모라비아의 향토색에 넘친다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대표작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시킨의 시를 거의 그대로 대본으로 한 극히 러시아적인 내용임에도 곡풍은 오히려 이탈리아적인데 이탈리아 여행을 한 뒤 남긴 이탈리아 기상곡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보로딘의 이골공,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프로코피예프의 전쟁과 평화,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광대한 러시아의 평원과 연결되지 아니하면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영국의 현대 작곡가인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가 20여년 전 코벤트가든 오페라에 의하여 국내에서 처음 연주되었을 때 이탈리아식 오페라만 알고 있던 (저를 포함) 대부분의 우리나라 관중이 느꼈을 이질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중해의 따뜻한 해변, 대리석 궁전, 목가적 전원과 관능에 넘치는 주인공을 떠올리는 이탈리아식 오페라가 출발점이지만 이에 질리면 북해의 거친 파도, 울창한 삼림 그리고 정한한 남자와 강인하면서도 끝내 남자를 구원하는 여성이 그리워지는 북구의 오페라에 눈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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